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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 실크스크린 392.1987, 사무엘 베케트 '게임의 종말'

추동 | 기사입력 2019/10/03 [09:15]

앤디 워홀 실크스크린 392.1987, 사무엘 베케트 '게임의 종말'

추동 | 입력 : 2019/10/03 [09:15]

 어느 유명 연출가의 공연 한 편이 무대에 올려져 공연을 보러 간다. 수 십 년 전에도 다른 연출가에 의해 올려져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었고, 당시 나는 그 작품을 보면서 사무엘 베케트의 숨겨진 속마음을 읽었던 것 같다.

 

당시의 생각과 함께 발길을 극장으로 재촉하며, 과연 무대를 어떻게 사용할 까? 배우들은 연기를 어떻게 할까? 새로 번역되어진 대사는 어떤 단어로 무대에서 관객과 조우할까? 등을 매우 궁금해 하며, 기대하며 극장으로 들어선다.

 

마루박이가 된 배우들이 공연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아니 공연은 이미 시작되었고 어느 순간 내가 첫 대사 할 순간만 객석에 앉은 연출의 손짓을 기다리고 있다.

 

객석을 둘러보니 다양한 연령의 관객이 극장에 찾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눈에 봐도 척 하고 눈에 띄는 나는 연기하는 배우와 같은 극단에 있는 동료배우입니다’ , 내지는

나는 연기하는 사람입니다’ , ‘나는 무대에서 내 삶을 바치는 사람입니다등의 동류 직업인이 모인 전체 객들 속에서 퍼센테이지로 너무 많이 눈에 보인다.

 

결국 순수 관객들은 채 몇 안 된다는 말이다.

 

더욱이 이 공연을 보고 사무엘 베케트를 분석하고 해석하고 조립하고 해체하여 새로운 해석과 결론을 도출해 줄 그런 용기 있는 젊은 학도들은 둘 또는 셋.

조금 실망이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자면 학생들을 동원하지 않은 요즘 세상에서 참 보기 힘든 희귀 연극이란 것이다.

아마도 그 젊은 학생들은 이 작품이 너무 좋아서, 연출이 너무 좋아서, 작가가 너무 좋아서 이 공연을 보러 온 진짜배기 관객들인 것이다. 연극클럽 무서운관객들이다.

 

 

용감한 연극 ’ , ‘희귀 연극은 그 연출가의 자랑스러운 덕목이다.

 

그러한 것을 생각하면서 아령이와 함께 연극을 본다.

 

▲     © 문화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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