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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날개

문예당 | 기사입력 2003/04/08 [22:31]

이상의 날개

문예당 | 입력 : 2003/04/08 [22:31]


이상의 날개 - 5월18일 까지 3차 연장 공연중 李箱の羽 - 5月18日まで 3次延長公演中 蔡允一 演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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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서울 통인동에서 이발사의 아들로 출생
1912년 부모를 떠나 백부 김연필의 장손으로 성장
1917년 신명학교(新明學校, 당시 누상동 소재) 입학. 이 때부터 그림에 소질 보임
1926년 보성고보 5학년 졸업,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 입학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졸업.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취직
<조선과 건축> 회지 표지도안 현상모집에 1등과 3등으로 각각 당선
1931년 처녀시 '이상한 가역반응'과 '오감도' 발표, 서양화 '초상화'를 '선전(鮮展)'에 출품, 입선
1933년 심한 각혈로 총독부 기수직 사임
1934년 '구인회' 가입, 본격적인 문학활동 시작.
1936년 '지주회시' '날개' 발표, 변동림과 결혼 후 도일
1937년 사상 불온혐의로 일본 경찰에 유치, 4월 17일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객사, 5월 유고작 '종생기' 발표




■ 작가 이야기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이상은 한국 근대문학사가 낳은 불세출의 시인이자 작가이다. 그는 스스로를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라 불렀거니와, '폭풍이 눈앞에 온 경우에도 얼굴빛이 변해지지 않는 그런 얼굴'을 지닌 사람만이 사는 세계의 주민이 되고자 문을 두드린 최초의 한국인이었다. 문학을 통해서 인간 고통의 근원을 끊임없이 발견하려 했던 이상한 천재 작가, 그가 바로 이상이었다.
1910년 9월 23일, 서울에서 태어난 이상(본명 : 김해경)은 1931년 '이상한 가역반응'이라는 시로 문단에 데뷔했다. 1933년부터 폐가 악화되기 시작했고, 1934년에는 김기림, 정지용, 박태원 등과 교유하면서, <조선중앙일보>에 그 유명한 시 '오감도'를 연재하다가, 빗발치는 독자들의 항의로 중단하기도 했다. 건강 악화와 사업 실패, 사상 혐의로 피검되는 등 결코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았고, 게다가 26년 7개월이라는 짧은 생애로 요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감도' 등의 시와 '날개', '지주회시', '봉별기' 등의 소설을 통해 거의 파격적으로 한국문학의 수준을 올려 놓았다.

이상이 주로 문학 활동을 하던 1930년대는, 식민지의 병리 현상이 완연한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은, 미국의 T. S. 엘리엇이 그랬듯이, '황무지' 의식을 가장 예각적이고 실험적으로 드러낸 작가에 속한다. 그의 문학이 기본적으로 그로테스크한 왜곡의 상태와 불안 의식, 세계 파국의 공포, 의식 체계와 형태의 파괴, 숫자의 뒤틀림과 유희, 그리고 자기 분열과 자의식의 과잉 등의 비합리적 세계로 일관되고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인 지도 모른다. 그것은 기존 문학 형태를 파괴하고 해체시킨 뒤에 전혀 새로운 의식과 언어, 스타일로 구축된, 그야말로 '이상한 가역반응'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상 문학은 한국 문학에서 새로운 세계 인식과 해석을 확인시켜 줌과 동시에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우찬제/문학평론가,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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