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인 ‘초과이익 환수 조항 삭제’와 관련된 실무를 맡았던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이 21일 숨진 채 발견됐다. 대장동 의혹 관련 검찰 수사를 받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숨진 사람은 김 처장이 두 번째다. 지난 10일에는 ‘황무성 성남도개공 초대 사장 사퇴 압박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던 유한기 전 성남도개공 개발사업본부장이 투신해 사망했다.
경찰에 따르면, 성남도시개발공사 직원은 이날 오후 8시 30분쯤 사옥 1층 개발1처장실에서 김 처장이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당시 개발1처 직원들은 모두 퇴근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김 처장 사망에 대해 “범죄 혐의점은 없다”고 했다.
2015년 대장동 개발 사업 진행 당시 성남도개공 개발사업1팀장을 맡았던 김 처장은 대장동 특혜 의혹의 핵심인 ‘민간사업자 선정 과정 점수 몰아주기’와 ‘초과이익 환수조항 삭제’ 등의 사안에서 실무를 맡아 검찰과 경찰의 조사를 받아 왔다.
당초 성남도시개발공사에서는 사업2팀이 대장동 사업을 주도했다. 하지만, 유동규(구속 기소) 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의 지시로 김 처장이 팀장으로 있던 사업1팀이 이후 실무를 담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업1팀은 최근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했던 유한기 개발사업본부장 산하였다. 김 처장은 성남 도개공 입사 전이었던 2008년부터 유동규씨와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처장은 그해 3월 성남도개공이 화천대유가 참여한 ‘성남의뜰’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할 당시 1·2차 평가에 모두 참여해 성남의뜰에 점수를 몰아줬다는 의혹을 받았다. 일부 평가에서 성남의뜰에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몰아주는 식으로 당시 경쟁자였던 산업은행컨소시엄과 메리츠증권컨소시엄을 제치고 화천대유 측이 사업자로 선정되는 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김 처장은 그해 5월 사업1팀 실무자가 사업협약서 검토 의견서에 초과이익 환수 조항을 넣었다가 7시간 뒤에 해당 조항을 삭제하는 데 소극적으로 관여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당시 사업1팀 소속인 김 처장과 이모, 한모씨 등은 택지 분양 가격이 상승하게 되면 민간사업자들이 수천억 원대의 추가 개발 이익을 독점할 우려가 있다며 초과이익 환수 조항을 추가한 사업협약서 수정안을 작성해 성남의뜰 측에 주고 공사 내부 관련 부서에 공문으로 발송했다. 그러나 정민용 투자사업파트장 등이 삭제를 요구했고 사업협약이 수정 없이 원래대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김 처장은 직급상 정 실장의 상급자였지만, ‘대장동 핵심’인 유동규 전 본부장의 지시를 받은 정 실장의 말을 거스를 수 없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후 이 조항 삭제로 대장동 사업자인 화천대유는 수천억 원의 초과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김 처장은 초과이익 환수 조항 삭제 경위에 대해 지난 10월 ‘윗선 지시가 있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런 것 없었다”고 부인했었다. 김 처장은 이후 성남의뜰에서 사외이사를 맡기도 했다.
일각에선 정민용 전 성남도개공 투자사업파트장이 이날 불구속 기소된 것과 관련해 김 처장이 압박을 느낀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수사팀은 이날 정민용 변호사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 법률위반(배임), 부정처사후수뢰죄 및 범죄수익은닉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윗선 지시’를 부인하는 입장이었던 김 처장은 초과이익 환수 조항 삭제 경위에 대해 지난 10월 언론 인터뷰에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전략사업실 쪽 정민용 변호사(당시 실장)가 빼고 올리라고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처장은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검찰의 사법처리 대상에 오른 피의자 신분은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김 처장은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압수 수색이나 구속영장 등도 청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에 대한 마지막 검찰 조사는 이달 9일이었는데, 당시에도 그는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김 처장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검찰 수사는 더 위축될 전망이다. 유 전 본부장 사망 이후 한동안 숨 고르기에 들어갔던 검찰은 조만간 사업 결재라인에 있던 성남시 고위급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재개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에 또 휘청이게 됐다.
검찰 수사를 놓고 강압 수사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유한기 전 성남도개공 개발본부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지 2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사건 관계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되풀이된 만큼 수사 과정에서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참고인 조사를 했을 뿐이어서 강압 수사 의혹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