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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냐아저씨, 안톤체호프 작

문예당 | 기사입력 2013/10/28 [18:02]

바냐아저씨, 안톤체호프 작

문예당 | 입력 : 2013/10/28 [18:02]


명동예술극장은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대표작 <바냐아저씨(이성열 연출)>를

10월 26일부터 11월 24일까지 무대에 올린다. <바냐아저씨>는 세계적으로 제일 자주, 꾸준히 공연된다고

알려진 체호프의 희곡들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정수(精髓)로 찬사를 받아 왔다.

이 작품은 주인공 바냐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상실과 괴로움, 열망을 통해 우리들 삶 자체의 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루지 못한 것들이 실제의 삶을 지배하는’ 역설은 조용한 일상 속 균열과

괴로운 몸부림, 갈등의 폭발을 통해,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우리의 삶이 그로테스크하게 보일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꾸준히 사랑 받는 고전, 체홉의 '바냐아저씨'

명동예술극장의 '바냐아저씨'는 인물 하나하나에 무게감과 울림이 있어 고전연극의 깊이를 경험하고,

오늘날의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무대로 꾸며진다.

이 작품은 체홉 희곡세계의 새로운 흐름과 현대성을 보여준다고 평가 받는 4막 희곡으로,

1899년 가을 모스크바예술극장초연 이후, 러시아의 많은 극장에서 성공적으로 공연되었다.

‘일상생활의 드라마’ 등으로 언급되며 각종 언론에서 호평을 받았다.



악인도 선인도 없는 우리 현실 속 이야기

<바냐아저씨>에는 크게 현실에 괴로워하는 인물과 현실에 만족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겉보기에는 오히려 무료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그들은 잃어버린 세월과 답답하기만 한

현실에 대한 좌절, 그리고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아픔으로 괴롭고 예민한,

폭발 직전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극복을 시도하지만 결국 타개할 수 없는 현실 아래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쓸쓸할 뿐이다.

체홉은 작품에서 괴로움을 대하는 인물들의 서로 다른 태도를 냉철하게 관찰하고 묘사하고 있다.

안톤 체홉(Anton Chekhov)

안톤 체홉(1860-1904)은 러시아 최고의 극작가이자 단편작가로 작품을 빨리, 많이 쓰기로도 유명하다.

44살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체홉은 희곡, 소설, 꽁트 등을 포함하여 약 900편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다.

체홉의 작품에는 특별한 사건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인물의 보편적인 삶이 들어 있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게 한다. 동시대 극작가들 가운데 체홉의 작품만큼 전세계적으로

꾸준히 공연되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바냐아저씨(1896)>는 <벚꽃동산(1903)>, <세자매(1901)> <갈매기(1896)>와 함께 체홉의 4대 희곡으로

불린다.

[시놉시스]

바냐 아저씨는 누이가 죽은 후, 조카 소냐와 함께 매부의 시골 토지에서 살고 있었는데,

퇴직한 매부가 젊고 아름다운 후처 엘레나를 데리고 돌아왔을 때

매부가 사실은 속물임을 알고는 실망감에 빠진다.

이후 엘레나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 괴로움은 심화된다.

매부가 땅을 팔고 도시로 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바냐는 절망하여 매부를 권총으로 쏘지만 빗나가고,

결국 화해하여 모두 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가게 된다.

주인공은 일상에 파묻혀 살지만 사랑에 대한 열정, 그리고 불만과 저항도 내재되어 있는

캐릭터로 그려지는데, 작품 속 갈등은 19세기 말 러시아의 세속과 도덕에 대한 항의로

볼 수 있다.



공연시간        평일 19시 30분 | 주말, 공휴일 15시 | 화요일 공연 없음(변동가능성 있음)

입 장 권        R석 5만원 | S석 3만5천원 | A석 2만원          관람등급 만 13세 이상 관람가

예매문의        1644-2003, www.MDtheater.or.kr

출    연        백성희, 이상직, 한명구, 박윤희, 황정민, 정재은, 이지하, 이정수, 유시호



“완전히 새로운 연극이자, 대중의 머리를 후려치는 망치” 막심 고리끼Maxim Gorky
“체호프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정수” 레프 도진Lev Abramovich Dodin

‘이루지 못한 것이 지배하는 실제 삶’에 대한 이야기, 체호프의 <바냐아저씨>
명동예술극장은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대표작 <바냐아저씨(이성열 연출)>를 10월 26일부터 11월 24일까지 무대에 올린다. <바냐아저씨>는 세계적으로 제일 자주, 꾸준히 공연된다고 알려진 체호프의 희곡들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정수(精髓)로 찬사를 받아 왔다. 이 작품은 주인공 바냐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상실과 괴로움, 열망을 통해 우리들 삶 자체의 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루지 못한 것들이 실제의 삶을 지배하는’ 역설은 조용한 일상 속 균열과 괴로운 몸부림, 갈등의 폭발을 통해,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우리의 삶이 그로테스크하게 보일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 작품을 공연하기 위해 10년을 기다려왔다” 이성열 연출과
이상직, 백성희, 한명구 등 한국 대표배우들이 만드는 <바냐아저씨>

이번 작품의 연습은 체호프가 발견한 ‘새로운 일상’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되었다. <바냐아저씨>를 위해 10년을 기다렸다는 이성열 연출은 체호프의 ‘새로운 일상’이란 서양의 풍경화와 동양의 산수화가 다르듯 이제까지와는 다른 일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그의 <바냐아저씨>는 일상적이되 격렬하며, 낯설고 아프고, 또 놀라게 하는 작품으로 꾸며지며, 공연이 끝나고 나면, 냉혹한 현실에서 오는 쓸쓸함과 공포가 무대에 남겨질 것이다.
“체호프는 산문적 세계를 시적인 것으로 바꾸고, 꽉 찬 세계를 여백으로 비워야만 볼 수 있는 인생의 비경(秘境)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거기서 우리는 마침내 깨닫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의 진경(眞景)임을. 이렇듯 체호프가 발견한 ‘새로운 일상’은 시적이고 허허로우면서도, 마지막 진단서와도 같이 낯선 모습으로 우리를 아프고 놀라게 한다. (이성열)”
<바냐아저씨>의 평범한 등장인물들은 이상직, 백성희, 한명구, 박윤희, 정재은, 이지하, 황정민 등 연극계 대표배우들로 살아 숨쉰다. 2000년 ‘백상예술대상 연극대상’, 2004년 ‘히서연극상 올해의 연극인상’에 빛나는 이상직은 최근 전남 구례에서 귀농생활을 하고 있다. 시골에 파묻혀 영지를 관리하며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바냐와 초보귀농인 배우 이상직은 왠지 모르게 닮아 있다. ‘젊고 강렬한’ 무대가 될 이번 <바냐아저씨>의 바냐는 이상직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다. 또한 올해 연극인생 70주년을 맞은 백성희는 그간 약 400여 편의 작품에서 만난 여인들의 삶을 바탕으로 마리야를 연기하겠노라고 밝혀,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공연은 마치 껍데기 하나를 벗겨놓은 듯 민감하고 격렬한 자극이 될 것이다.
바냐는 예민한 사람. 그는 괴로운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마침내 폭발한다. (이성열)”

일상의 평범한 드라마가 비극이 되는 순간, 이를 보여줄 강렬한 무대
바냐는 조카 소냐, 노모와 함께 평생 매부의 시골 영지를 돌보면서 노동을 천직으로, 매부의 명성을 낙으로 느끼며 산다. 퇴직한 매부가 젊고 아름다운 새 부인 옐레나와 함께 영지를 방문하면서 시작된 엇갈리는 감정들은 조용하던 시골 가정에 파문을 일으킨다. 이후 바냐는 옐레나를 사랑하게 되면서 괴로움이 심화된다.
바냐를 둘러싼 인물들은 모두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괴로움을 덜고자 몸부림 치지만 어떤 비전이나 희망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괴로움을 극복하려는 그들의 몸부림은 평온한 일상을 해체하고 결국엔 쓸쓸함만이 남는다.
매부가 땅을 팔고 도시로 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절망한 바냐는 매부를 권총으로 쏘는데 총알이 모두 빗나가면서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에 그치고 만다. 결국 모두가 쓸쓸하게 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가 일상을 견디며 살아간다. 모두에게 가혹할 정도로 완벽한 절망은, 오히려 작은 희망의 미래를 볼 수 있게 한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체호프는 냉정할 정도로 인물들과 거리를 두어 관객들은 무한한 자유를 만끽한다.

세월의 흐름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드라마
<바냐아저씨>에는 유달리 시간과 세월, 나이에 대한 대화가 많다. 첫 장면에서 유모 마리나와 아스뜨로프는 지난 10여 년 간의 기억을 더듬어 늙고 시들어버린 세월의 흔적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월이 흐르고 인간이 늙는 것은 필연이지만 그들은 이런 뻔한 진실을 새삼스레 확인하면서 더욱 더 죄어 오는 시간의 압박 속에서 방황한다. 교수보다 먼저 옐레나에게 청혼할 수 있었음을 후회하는 바냐는 지난 10년의 세월이 고통스럽기만 하다. 그의 고통은 현재의 일탈을 낳고, 25년 간의 노동으로 소진된 과거를 한 순간 무의미하고 불행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어떻게 좀 해줘! 아 젠장. 내 나이 마흔일곱이야. 예순까지 산다 해도 13년이나 남았어. 길어! 13년을 어떻게 살지? 뭘 하면서 그걸 채워? 남은 인생을 새롭게 살 수만 있다면. 맑고 조용한 아침에 눈을 떠, 내 인생이 다시 시작하는 걸. 지나간 모두가 연기처럼 사라지는 걸 느낄 수만 있다면.” 바냐는 남은 인생에서라도 건설적인 가치를 찾고자 하지만 현실은 막막하다. 한가로운 대화로 천천히 시작된 작품은 절망하는 바냐와 짝사랑에 슬퍼하는 소냐 등의 이야기로 속도를 높여가다가 바냐가 방아쇠를 당기는 짧은 순간까지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혹독한 겨울을 암시하며 막이 내리는 작품은 소냐의 말처럼 “우린 언젠간 쉬게 될 것”이라는, 시간이 아주 멈춰버린 상태까지 보여주며 끝난다. 시간의 멈춤은 곧 가능성 없는 인물들의 열망과 이어지고 그 속에서 계속 몸부림치며 살 수 밖에 없음을, 그래서 이 현실이 냉혹한 것임을 잔인하게 보여준다.


작|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          

번역| 오종우            

연출| 이성열                

윤색| 동이향

바냐|이상직                

마리야|백성희(특별출연)                

교수|한명구              

아스뜨로프|박윤희
          
마리나|황정민                

옐레나|정재은                

소냐|이지하                

쩰레긴|이정수          

에핌|유시호

드라마투르그| 김옥란        무대디자인| 임일진   조명디자인| 김창기  

의상디자인| 김지연  분장디자인| 이동민                소품디자인| 이희순   작곡·음악감독| 장영규

공연시간        평일 7:30 PM | 주말공휴일 3:00 PM | 매주 화요일 공연 없음
입 장 권        R석 5만원 | S석 3만5천원 | A석 2만원                관람등급 만 13세 이상 관람가
소요시간 130분(인터미션 없음)                영문자막 11.02(토) 3:00PM, 11.16(토) 3:00PM


11.02 (토) 공연 종료 후
공연장        예술가와의 대화
이성열(연출), 김옥란(드라마투르그)        
  
11.04 (월) 오후 7:00
2층 로비        15분 강의 “책임PD가 들려주는 <바냐아저씨>이야기”
정명주(명동예술극장 책임PD)
          
11.05 (화) 오후 7:30
공연장        체호프의 작품을 재해석한 영화 <피아노를 위한 미완성 희곡>
김옥란(드라마투르그)  

      

악인도 선인도 없는 우리 현실 속 그들의 이야기

<바냐아저씨>의 인물들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괴롭다. 그들의 괴로움은 잃어버린 세월, 타개할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한 현실, 그리고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이다. 겉보기에 건조하고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지만 이들의 내면은 이미 폭발 직전의 위태로운 임계점에 도달했다. 선악으로 구분 지을 수 없는 평범한 인물들은 현재의 불만과 절망이 지나간 후 남겨진 시간에 대해 모두 다른 선택을 한다. 모두가 현실의 괴로움을 극복하고자 몸부림치지만 결국 실패하고 쓸쓸해질 뿐이다. 체호프는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괴로움을 대하는 인물들의 태도를 냉철하게 관찰하고 묘사한다. 그들 삶에 있어 열망과 좌절을 대하는 모습은 우리들 자신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바냐(47세) “화나고 분해서 밤에 잠이 안 와요. 모든 걸 가질 수 있었던 그런 시간이 있었는데, 어리석게 허비하고 이제 나이가 들어 어쩔 수 없이 다 놓쳤다는 생각이 들면.”
젊은 날의 우상이었던 교수를 위해 25년 간 헌신했으나, 교수가 퇴직한 후 깨어진 우상과 잃어버린 청춘으로 삶의 잔인함을 깨닫는다. 뒤늦게 찾아온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며 교수의 젊은 부인 옐레나의 헌신을 비난한다.

아스뜨로프(40세) “아니 이봐! 새로운 삶이라니! 자네나 나나 우리 처지에 희망은 없어.”
의사인 그는 11년 전 29세였을 때부터 이 가족을 만나러 왔다. 과거에는 사람과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이상주의자로, 브나로드(인민계몽운동) 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희망과 위로를 기대하지 않는 냉정한 리얼리스트이다. 실패한 이상과 현실의 질곡에서 괴로워하며 옐레나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나, 그녀와의 사랑마저도 쓸쓸하다.

옐레나(30대 초반) “끔찍해! 날 좀 어디로 데려가줘요!”
세례브랴꼬프 교수의 두 번째 부인. 상당한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교수를 존경하여 결혼했지만 무료한 일상 속에서 의사 아스뜨로프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녀의 괴로움은 사랑(자유)과 도덕률(의무) 사이에서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현실에 대한 무료함과 탈출욕구를 가지고 있다.

소냐(20대 초반) “그래도 어쩌겠어요, 살아야죠!”
삼촌인 바냐와 함께 영지를 관리하는 세례브랴꼬프 교수의 딸. 의사 아스뜨로프를 향한 짝사랑, 아버지의 무관심, 못생긴 얼굴에 대한 콤플렉스로 괴로워하나 항상 희망을 잃지 않는다.

세례브랴꼬프 교수(60대) “늙는다는 건 지긋지긋하고 역겹지. 젠장.”
퇴직한 문학전공 교수. 귀족출신인 바냐 가문과 달리 평민 출신으로 경제적으로 계속 처가의 원조를 받아 왔다. 퇴직 후 경제, 사회적으로 무기력해짐을 느낀다. 세월의 흐름과 현재에 괴롭다.

[작가소개]
인간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

체호프는 러시아 최고의 극작가이자 단편작가로 작품을 빨리, 많이 쓰기로 유명하다. 그는 44살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희곡, 소설, 꽁트 등을 포함하여 약 900편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으며, 현대문학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의 작품에는 특별한 사건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인물들의 삶이 들어 있어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보게 한다. 체호프는 그 작은 것들이 모여 진짜 삶을 이루는 소중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때로는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동시대 극작가들 가운데 체호프의 작품만큼 전세계적으로 꾸준히 공연되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그래서 고리키, 버지니아 울프,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현대의 많은 작가들이 체호프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국내에서도 1920년대부터 체호프는 지속적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때로는 진지하고 무겁게, 또 때로는 해체와 실험의 대상으로 한국 연극에서 체호프는 달라진 시대감각을 대변하고, 다른 화두를 던져 우리를 계속 자극시킨다.  

체호프는 러시아 남부의 작은 바닷가 마을 타간로그에서 태어났다. 체호프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의 구멍가게 일을 도왔다. 그가 16살이 되던 해, 그의 가족은 모스크바의 빈민가로 떠났다. 이후 모스크바대학교 의학부에 진학한 후에도 그는 파산한 아버지 대신 유머잡지와 신문에 콩트를 썼다. 체호프에게 글쓰기는 관념이나 이념의 유희가 아니라 생계수단이었다. 그는 생활 속 사소하고 잡다한 현상들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그것이 그의 문학세계를 이루었다.
4대 희곡 외에도 <지루한 이야기>, <사할린섬> 외 수많은 작품으로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객관주의 문학론을 주장하였고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대한 올바른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저술활동을 벌였다.


[연출소개]
“이성열은 인문학적 기반이 탄탄하여 우리 연극에서 미흡했던
존재 천착에 강하다.” 제23회 이해랑연극상 심사평

극단 백수광부 대표, 상임연출(1996-)

이성열 연출은 1998년 <굿모닝? 체홉>을 통해 우리 현실에 맞는 ‘일상성’의 체호프를 무대에 올렸다. 이후 <놀랬지? 체홉>, <세 자매>, <굿모닝? 체홉2>를 포함, 이번 <바냐아저씨>는 그의 다섯 번 째 체호프이다. 그는 체호프의 언어, 카프카와 윤영선의 글과 같이 일상성, 그로테스크한 현실의 주제를 좋아한다. 2007년 김상열연극상 수상 당시 “인간사회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지만 결코 심각하고 무겁지만은 않은, 또한 심심치 않게 재기 발랄한 발상 전환으로 무대를 뒤집어 놓지만 결코 경박하지 않은” 것이 장점이라는 심사평을 들으며, 정밀한 사실주의와 격렬한 해체가 공존하는 무대를 구현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백수광부는 이제 우리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극단 중 하나로, 이성열 연출은 최고의 연출가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나는 <바냐 아저씨>가 시적이고 여백이 많고 낯설고 아프고 놀라게 하고 결국에는 쓸쓸해지는... 그런 작품이 되길 바란다.”

수상
1997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Best 3' <키스>
1998 한국백상예술대상 ‘신인연출상’ <굿모닝? 체홉>
2004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Best 3' <자객열전>
2005 서울연극제 ‘우수상’, ‘연출상’ <그린 벤치>
2005 올해의 예술상 ‘연극부문 최우수작품상’ <그린 벤치>
2006 서울연극제 ‘우수작품상’ <여행>
2007 김상열연극상 <물고기의 축제>
2009 서울연극제 ‘연출상’ <봄날>

연극 연출 | 하녀들(1992) · 여성반란(1993) · 장 주네의 하녀들(1995) · 키스(1997) · 굿모닝 체홉(1998) · 파티(1999) ·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2000) · 두 도시 이야기(2000) · 세자매(2001) · 불티나(2001) · 햄릿(2004) · 그린 벤치(2005) · 여행(2005) · 봄날(2009) · 뱃사람(2009) · 운현궁 오라버니(2009) · 야메의사(2010) · 미친극(2011) · 과부들(2012) · 나의처용은밤이면양들을사러마켓에간다(2012) 외 다수

        



참고자료 | 체호프가 주는 자유, 그리고 긴 여운

오종우(성균관대 문과대학 러시아어문학과 교수)

체호프의 작품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그래도 의미는 있겠지요?”
“의미라… 자, 지금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눈이 와서 멜랑콜리하다고 하면, 눈의 의미는 멜랑콜리에 갇힌다. 그 이상, 내리는 눈이 주는 느낌은 사라진다. 눈이 와서 불편하다고 하면 미끄럽고 질척한 길만 떠올리게 된다.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규정하여 내린 의미에 현실이 갇히는 꼴이다. 그렇지만 단순하고 가볍게 ‘눈이 내린다’고 하면 도리어 단순하지 않게 여러 의미를 준다. 사람들마다 또 다르게. 내리는 눈이 어떻다고 결정지어 주지 않으니까. 이렇게 체호프는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가 “체호프를 읽으면 자유의 놀라운 의미를 알게 된다”고 했고, 수전 손택이 “체호프는 우리를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예술가다”고 했다.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1860~1904). 그는 44년의 짧은 인생을 살고 떠났지만 콩트까지 포함하면 900여 편에 달하는 단편소설과 18편의 희곡을 남겼다. 그리고 그 작품들은 현대 문학과 예술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1991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작가 네이딘 고디머가 “체호프가 없었다면 소설을 쓰는 우리들 가운데 누가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체호프가 없었다면 문학은 고리타분한 형식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고 한 말은 현대 문학이 체호프를 스승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말해 준다. 현대 문학은 체호프를 통해서 양식과 주제를 습득해 풍요로운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리키, 부닌,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어니스트 헤밍웨이, 캐서린 맨스필드 등 현대의 저명한 작가들이 체호프를 읽으며 문학을 배웠거나 체호프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레이몬드 카버가 말한 “체호프를 읽으면 문학과 예술의 위대한 힘을 알 수 있다”를 몸소 실천한 것이다. 현대의 연극 역시 체호프의 새로운 극적 스타일에서 출발해서 다양한 장르를 전개시켜 나갔다. 체호프의 희곡들은 사무엘 베케트, 아서 밀러, 베르톨트 브레히트, 장고 에드워즈 등과 같은 현대의 극작가들뿐만 아니라 스타니슬브스키라는 걸출한 연출가를 낳으며 현대 연극의 초석을 놓은 것이다. 스타니슬라브스키가 체호프 희곡을 바탕에 두고 만든 연기 훈련법은 지금도 배우들이 기본 연기술로 배우는 방법이다. 체호프는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여 예술의 전망을 새롭게 밝힌 그야말로 위대한 예술가인 것이다.
이렇게 화려한 찬사를 받는 체호프는 그러나 대단히 소박한 작가였다.


체호프의 작품들은 우리네 삶 자체의 진실을 보여 준다. 그는 어떠한 전망을 제시하려고 애쓰지 않았고 그냥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그대로 들여다봤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무척 평이하다. 평범하여 그만큼 다양한 인물들, 그들만큼 다채로운 감정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일상의 자질구레한 디테일들과 그것에서 비롯되는 사소한 해프닝들, 이런 소소한 것들이 빚어내는 이야기가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한다.
체호프는 이렇게 우리네 일상을 그대로 보여 주는 일이 예술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영원하다거나 단순히 좋다고 부르는, 그리고 우리를 취하게 하는 작가들은 하나의 공통된 그리고 아주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어디론가 가서 거기서 당신을 부른다는 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이성이 아니라 자신의 온몸으로, 목적을 가지고 와서 마음을 흔들어 놓는 햄릿 아버지의 유령에게처럼 그들에게도 어떠한 목적이 있다고 느낍니다. 그들보다 ‘더 뛰어난’ 작가들은 사실적이며, 삶을 있는 그대로 씁니다. 그러나 당신은, 각각의 문장들에 마치 액즙과도 같은 목적의식이 스며들어 있다면서,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배제하고 어떻게 되어야 할 삶을 느낍니다. 또 그런 것이 당신을 홀립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는! 우리는 삶을 있는 그대로 씁니다. 그 이상은 알 바 아닙니다.”
그런 까닭으로 인해서 체호프는 철학적인 이념이 없다거나 사상적인 깊이가 얕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았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독자들과 심지어 문학과 예술을 연구하는 학자들까지도 체호프를 읽고서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어리둥절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작품들이 평범해서 오히려 난해하다는 반응이다. 이런 반응에 대해서 체호프는 도대체 왜 뭔가 거창한 틀에 서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묶으려 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건 개개의 생명을 하나의 관념에 종속시키는 폭력이 되지 않겠냐고 말이다. 체호프는 문학이 무엇을 꼭 전달해야 하는 매개체라고 여기지 않았다.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을 위해 봉사하는 도구라고도 보지 않았다. 문학은 그저 예술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상의 부재를 비판하는 평론가들에게 들볶이다가 말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행간에서 경향을 찾아 나를 자유주의자니 보수주의자니 하고 확고하게 규정지으려는 자들이다. 나는 자유주의자도 보수주의자도 점진주의자도 성직자도 무신론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단지 자유로운 예술가이고자 한다.” 거기에 덧붙이기를, “나는 거짓과 모든 형태의 폭력을 증오한다. 내게 가장 신성한 것은 모든 형태의 거짓과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진실에 대한 아주 절대적인 자유이다. 이것이 내가 위대한 예술가라면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강령이다.”


우리는 작가의 전기에서 진실의 문학이 탄생하는 배경을 읽을 수 있다. 체호프는 러시아 남부의 작은 바닷가 마을 타간로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용 잡화를 파는 구멍가게를 꾸리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체호프는 학교를 마치면 아버지의 상점 일을 도와야 했다. 그가 16살이 되던 해, 운영이 신통치 않던 아버지의 가게는 결국 빚을 지고 다른 사람 손에 넘어 갔다. 그리고 그의 가족은 모스크바의 빈민가로 떠났다. 이때부터 체호프는 자신이 벌어 학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타간로그에 남아 고등학교를 마친 후에는 모스크바대학교 의학부로 진학했다. 체호프는 대학을 다니면서 파산한 아버지 대신 일을 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때부터 유머 잡지와 신문에 콩트를 쓰기 시작했다.
체호프에게 글쓰기는 관념이나 이념의 유희가 아니라 생계 수단이었다. 그렇게 글을 쓰면서 체호프는 생활 속의 사소하고 잡다한 현상들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또 그것이 그의 문학 세계를 이뤘다. 체호프가 의사였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사이기도 한 체호프는 어떤 사실을 이해하려면 그 사실이 보이는 양태들을 진단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았다.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를 말할까. 좋은 의사란 병에 걸린 환자를 동정해서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그 병을 진단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다. 체호프의 작품에도 이러한 의사로서의 경험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체호프에게서 어떠한 메시지도 읽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가 보여 주는 희망은 안개처럼 어렴풋해서 자칫하면 놓치기 쉽지만. 체호프의 작품들은 사람에게 소중한 것은 거창한 이념에 오염되지 않은 소소한 것들이라는 점을 알게 해 준다. 터무니없는 것에 홀려 허황된 몽상을 좇다가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해 준다. 필요하다면 가혹할 정도로 완벽한 절망을 통해 희망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바냐 아저씨>처럼. 그럴 때 작은 것들의 생명력이 영감을 불어넣고 희망 찬 미래를 여는 것을 볼 수 있다. 파스테르나크는 장편소설 <닥터 지바고>에서 의사이자 시인인 주인공 지바고의 입을 통해서 이렇게 말한다. “체호프의 순박함. 인류의 궁극적인 목적이니 그 구원이니 하는 거대한 일에 대한 겸손한 무관심. 그런 것에 관하여 숙고하면서 전혀 건방지지 않은 것. 체호프는 마지막까지 예술가의 본분에 따른 당면한 일에 충실했고, 그 일을 하면서 조용히 누구에게도 상관하지 않는 개인적인 몫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살았다. 그런데 이제 그 일이 보편적인 관심사가 되어 마치 나무에서 딴 푸른 풋사과가 저절로 익어 가듯이 점점 그 맛과 의미를 더해 갔다.”
체호프가 주는 자유는 이렇게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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