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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 - 혜화동1번지 5기동인

문예당 | 기사입력 2012/04/15 [21:27]

해방공간 - 혜화동1번지 5기동인

문예당 | 입력 : 2012/04/15 [21:27]


해방공간의 연극은 봉건잔재 청산, 친일파 단죄, 국가건설 등의 사회적 현실과 단절된

전통의 회복, 한국적 근대극 확립, 친일연극의 잔재 청산 등의 연극 내적인 문제가

중첩되면서 해방공간의 연극은 이념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치열한 전장으로 변한다.

이념에 따른 연극인들의 이합집산이 계속되었고 연극적으로는 서구근대극과 전통의 대립

통속극과 대중극의 질적 문제 등 혼란의 연속이었다.

역사의 분기점에서 대한민국되돌아보다


혜화동1번지 5기동인



2012 봄페스티벌


  
‘해방공간’


   새로운 격동기를 맞이한 2012년,

   그 역사의 분기점에서 대한민국되돌아보다!

  제목 - 혜화동1번지 5기동인 2012 봄페스티벌 해방공간

  특징 - 서울문화재단 2012년 서울예술축제지원 선정 작


페스티벌 CONCEPT

새로운 격동기를 맞이한 2012년,

   그 역사의 분기점에서 대한민국되돌아보다!

패기넘치는 젊은 연출가들이 선사하는

       혜화동1번지 5기동인 2012 봄페스티벌 해방공간

           '분단'과 '근대화' 그리고 '오늘’역사적 재조명

1. 페스티벌 개요

        페스티벌명:  혜화동1번지 5기동인 2012 봄페스티벌 해방공간

        공연기간  :  2012년 4월 19일(목) ~ 6월 24일(일) (총65회)

        공연장소  :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        공연시간  :  월~금요일 8시 l 토요일 3시, 7시 l 일요일 3시 (6월 6일(현충일) 8시)

        티켓가격  :  일반 20,000원 l 학생 15,000원 l 패키지(5개) 50,000원

        관람등급  :  12세 이상

        러닝타임  :  각 작품별 약 90분

        세부일정  



        주    최  :  혜화동1번지 5기동인  

        제    작  :  그린피그, 극단 해인, 극단 미인, 극단 거미, 프로젝트그룹 빠-다밥

        기    획  :  드림아트매니지먼트

        후    원  :  서울문화재단, 사랑티켓, 민족문제연구소

        공연문의  :  드림아트매니지먼트 010-2683-0213, 010-3256-7987

2. 페스티벌 상세

① 혜화동1번지 5기동인 2012 봄페스티벌 <해방공간> 제작 의도

본 페스티벌 해방공간은 1945년 8월부터 1950년 6월 사이의 희곡을 공연한다.

'혜화동1번지 5기동인 페스티벌'의 키워드는 [초연, 창작실험, 시대정신]이다.

혜화동1번지 5기동인은 매년 봄 ․ 가을 페스티벌을 통해, 초연작으로 기획된

창작실험의 무대를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연극매니아의 꾸준한 관심 및 연극관객층

저변확대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또한 매년 여름과 겨울에는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실험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혜화동1번지 5기동인은 새로운 격동기를 맞이한 2012년 봄페스티벌 '해방공간'을 개최한다.


본 페스티벌은 대한민국의 핵심 사안인 분단, 근대화의 대립항으로서만 존재했던

  친일잔재, 전범에 대한 사법판단, 인권과 보편적 가치의 구현, 세계평화 등에 대한

  억압과 기피의 대상이었던
해방공간(1945.8-1950.6)의 희곡을 통해

일제강점기 체험의 재현과 성찰, 혼란상과 분단에 대한 당시의 역사인식을 반추해 봄으로써,

일제강점기의 연장선에서 시작하는 '분단'과 '근대화'를 재인식하고 그 바탕 위에서

현재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② 해방공간, 그 역사적 의미

속박과 예속에서 벗어나 모든 것이 가능해 보였지만,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았던 시기이다.

1945년~1948년의 해방정국은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투쟁의 장이었다.

정치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됐던 일제하의 분위기에서 억압됐던 욕구가

일시에 분출되면서, 정치체제와 토지개혁, 미군정과 모스크바 삼상회담, 좌우합작과 통일전선,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담론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던 것이다.


토지개혁과 주요사업의 국유화 등과 아울러 물가고와 인플레 등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경제적 요구, 전통주의의 지속과 근대주의의 유행이 뒤엉켜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문화적 요구가

강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대한 압도적 관심과 첨예한 이데올로기 투쟁은

이 시기 기술과 예술의 근대성에 대한 모색이 들어설 수 있는 여지를 앗아가 버렸다.


③ 근대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기형적인 식민지시기 헤게모니전략의 추상적 근대성을 부정한다.

근대성의 특징은 양면적이고 모순적이다.


자본주의 근대화라는 격랑 속에서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삶의 형식이 파괴된 결과로 나타난

개인의 해방과 방향감각상실, 환희와 고뇌를 동시에 겪은 경험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우리는 식민지침략과 근대로의 이행과정이 일치함으로써 본질적 상이함을 갖는

내재적 전통과 이식된 근대가 기형적 형태로 결합하게 된다.



식민시기 문화운동의 대세를 이루었던 근대에 대한 일방적인 추구는 개인의 인격과 자아라는

사적인 영역에서 전통을 부정하고, 추상적 근대성의 개념으로 그것을 대체하고자 했다.


일제의 지배헤게모니에 편승해 그 일부를 공유함으로써 근대를 수립한다는

지배계급의 예속적 발전 전략은
실질적으로는 민족독립을 포기하고 민족적 정당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근대화가 식민지시기 헤게모니전략의 일환으로 토착자본과 일부 민족주의자의 주도로

추구된 한계이자 비극이었다.


이로 인해 광범위한 친일 인맥이 해방 직후의 정치변혁과 '민족정기의 심판'에서 '살아남았다.  


④ 해방공간 연극의 시대성

㉮ 해방공간의 연극은 식민시기에 유보되었던 과제를 한꺼번에 떠안는다.

봉건잔재 청산, 친일파 단죄, 국가건설 등의 사회적 현실과 단절된 전통의 회복,

한국적 근대극 확립, 친일연극의 잔재 청산 등의 연극 내적인 문제가 중첩되면서

해방공간의 연극은 이념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치열한 전장으로 변한다.


이념에 따른 연극인들의 이합집산이 계속되었고 연극적으로는 서구근대극과 전통의 대립,

통속극과 대중극의 질적 문제 등 혼란의 연속이었다.


㉯ 해방공간의 대다수의 희곡은 좌익 극작가들에 의해서 발표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해방공간의 희곡 및 연극은 오랜 시간동안 보수적 학자들에 의해

제한적 소개, 과소평가, 폄하, 왜곡되어 왔다.



80년대 이후 일련의 젊은 학자들에 의해 당시 희곡들이 추가적으로 발견 및 발표되고,

해방공간의 연극에 대한 연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반쪽짜리 연극사의 복원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 해방공간은 식민시대 연장선상에 있으며, 동시에 오늘의 현실과 직접적 맥락을 가진다.

식민시기에 진행된 억압되고 왜곡된 근대화가 해방에 의해 원궤도를 회복하기는커녕

한계와 좌절을 가져다주었고,

남북은 미국과 소련의 개입과 주도에 의해 자생적인 대립과 투쟁을 인위적으로 억제 당했다.


이는 오늘날까지 친일 청산, 전범 처리, 민주주의 확립, 인권과 보편적 가치의 구현,

세계평화 등의 가치보다 반공이데올로기가 우선시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 해방공간 희곡의 공연이 부진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해방공간이 현 실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식민시대의 연장선에서 분단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성장과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억압되고

동시에 기피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역사의 해석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의 창작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여기에 해방공간의 다수의 작품들은 좌익에 의한 현실비판과 사회주의 혁명의 제창이라는

보수학자들의 인식도 일조한다.



따라서 해방공간의 희곡을 공연한다는 것은 식민지 체험의 재현과 성찰,

혼란상과 분단의 인식 등을 꼼꼼히 들여다봄과 동시에 현대의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다.


해방공간의 근대화를 기억하는 것은 21세기의 근대화를 창조 혹은 재창조 할 수 있는

비전과 용기를 제공할 것이다.

3. 참여 작품 내용

1. 윤한솔 연출, <두뇌수술> 진우촌 , 4.19-4.29

해방 후 어느 날, 오영호 외과의원 치료실.

오박사는 두 사람의 뇌를 서로 바꿔 넣는 수술을 했다.

수술 받은 이는 부잣집 아들이나 반편이로 태어난 상도와

                가난하지만 총명한 시골청년 무길이다.


상도의 정신이 온전해질 거라 기대한 백운양 부부는 자신이 무길이 같다는 상도를 보며

불안해하고, 무길이 신경통 수술을 한 줄로만 알고 있던 무길의 애인 인순은

무길이 반편이처럼 행동하며 헛소릴 하자 쓰러져 오열한다.


대뇌교환수술을 취재하러 온 기자는

두 사람이 대면을 해야만 이 일이 해결될 것이라 하는데…

광복 직후 발표된 진우촌의 <두뇌수술>(원제 : 망향)은 문명비판과 민족 주체성 회복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진우촌의 작품은 전통적 인습에 대한 비판, 끈질긴 생명의지와 사랑,

자연과의 대결에서 빚어지는 인간의 비극적 운명 등 세 갈래로 정리된다.


몽상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과 환상적 작풍이 특징이며,  

당시 '무대와 연극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극예술 신봉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1950년대 이후의 행적은 베일에 가려져 있어, 이후 진우촌이 어떤 작품 활동을 했는지

어디에서 사망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2. 이양구 연출, <그날은 오다> 김송 , 5.3-5.13

1940년 일제시대 서울 시내 중류 계급 홍상용은 정회총대(町會總代)를 맡아서

근로보국, 징용, 헌급 헌납 강요 등을 하면서 살고 있다.

국민학교 생도 인묵은 아버지의 뜻대로 경기 중학에 진학하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고 있지만

자유를 찾아서 가출하여 만주로 떠난다.

한편 사회주의자인 승용(상용의 동생)은 사상의 문제로 경찰에 체포된다.

그러나 승용은 고문을 받고 유치장으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경찰을 치고 도망친다.


6년 후 1945년 9월 9일 일본이 패전하고 미군이 진주한다.

만주로 간 인묵은 조선인 의용대에 들어가 일본군과 싸우다가 해방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온다.

승용은 해외에서 돌아온 혁명투사들을 원호하고 생활 지원을 하는 한편 조선 건국사업에

매진한다.


한편 해방 후 친일 전력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던 상용은 자신의 전 재산을

인묵의 이름으로 건국사업에 기부하고 자살한다.


김송의 『그날은 오다』는 해방 직후 발표된 희곡이다.

해방을 전후한 시기의 정치와 일상의 풍경이 비교적 잘 드러난 작품이다.

2012년의 관객들이 그 당시의 풍경을 날 것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원작 희곡의 대사를

가급적 훼손하지 않고 공연하려고 한다.


2012년 현재의 관점에서 이 희곡의 창작 배경과 작품의도, 공연 당시의 분위기 등을

조망해 볼 수 있는 해설자를 설정하여

이 작품이 2012년 봄 공연 되는 것의 의의를 관객과 소통해 보고자 한다.


3. 김수희 연출, <황혼> 송영 , 5.17-5.27

해방 직후 경성 근교의 부호 이진수의 별장에 딸 진주가 학교에 출근하지 않고 있다.

일본제국주의 교육을 한 죄에 대한 책임으로 교원 모두 총사직을 한 상태.

집안일은 거드는 오서방은 해방도 된 마당이니 다시 한글을 가르치면 되는 거 아니냐며

진주를 달랜다.

마침 이사장이 시골 대지주의 아들 강병호를 데리고 들어온다.


강병호는 재력으로 도회의원까지 했으나 독립이후 친일파로 몰려 서울로 도망 와 있는 상태다.

두 사람은 달라진 세상에 살길을 모색하고자 구일순 목사에게 통역사를 구해와

자신들의 처지를 제일 큰 은인이라고 생각하는 연합국, 즉 미국에 알리고자 계획한다.

진주는 그런 아버지의 행동에 환멸을 느끼며 아버지를 비판한다.


구일순은 김영칠이라는 통역생을 데리고 집을 방문한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청년이 만드는 독립정부야 말로 자신들의 입지를 다시금 확고히 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는 세 사람의 대화에 열혈청년 김영칠은 분개한다.

그때 강병호의 아버지 강참봉이 시골에서 올라와 이사장에게 아들의 벼슬자리가

어찌 되었냐며 따지기 시작하다, 들어간 돈을 모두 내놓으라며 아들을 데리고 가버린다.


이어 등장한 이사장의 부인 윤씨의 사촌인 옥천마님은 30여년 전 자신을 박대했던

윤씨와의 일을 언급하며 같은 동포에게서 빼앗은 부 역시 바뀐 세상에서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며 집을 떠나고 윤씨는 자신의 지난 행동을 후회한다.

결국 진주는 아버지에게 지난 일을 반성하라는 편지를 남기고 집을 떠난다.

해방 후 38이남에서의 송영의 유일한 희곡작품이다.

<황혼>은 해방 직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쓰여진 편에 속하나 해방의 감격 등이

감정적으로 나타나 있기 보다는 친일파의 몰락에 초점이 맞추어져

당시 좌익계에서 주장하던 봉건잔재, 일제잔재의 청산이라는 과제가

본격적으로 형상화된 비교적 드문 경향에 속하는 작품이다.


송영은 해방 전부터 당대의 대표적인 극작가로 활동해 온 만큼 이 작품에는

‘작가의 이념 전달’이라는 구호적 성격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재득세의 노력이 계속 좌절되는 가운데에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친일파 이사장의

‘그래도 나는 한 번 해보고 말겠다’라는 대사가 결국 그의 말대로 실현되어 버리는

  역사적 현실을 상기할 때, 이 마지막 부분은 매우 역설적인 감흥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 『예술운동』1호 (1945. 12) pp.98~122

4. 김제민 연출, <호접, 66년의 침묵> 김사량 , 5.31-6.10

'호접'은 1941년 12월 태항산의 호가장 전투를 시공간적 배경으로 다루고 있다.

중국 팔로군 지역과 일본군 점령지역 경계 화북지대의 마을에 조선의용군들은

선전활동을 마치고 잠시 쉬는 중이었다.


이때 이 마을의 구장이 밤중에 일본군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일본군은 새벽에 이 마을을 포위하였다.

급습을 당한 조선의용군들은 항전하면서 포위를 뚫었고, 팔로군 들이 오면서

일본군이 후퇴하고 전투는 끝이 난다.

조선의용군의 삶이 단순히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찾는 것만이 아니라 한층 나은 인간성의 실현과

그로인한 해방임을 보여주고 있다.


김사량은 중국으로 망명하여 항일한 문학가로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호접'은 해방 직후 남과 북에서 출판 및 공연되었으나, 정치적 문제로 1970년대까지도

그의 책을 소지하는 것 자체가 간첩행위로 여겨졌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이북작가의 작품들을 남한에서도 접할 수 있게 되었으나,

'호접'은 60년 가까이 묻혀야 했던 작품이다.

이러한 비극은 분단이후 냉전이 우리의 의식을 얼마나 억압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2012년, 인간보편적 관점에서 해방투쟁과 해방공간의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5. 김한내 연출, <우박소리> 박경창 , 6.14-6.24

1945년 12월, 가난한 시골집의 장성한 아들인 복만은 전문적으로 그림 공부한 화가 지망생이다.

그의 아버지는 복만의 미술이 집안 형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몹시 못마땅해 하며

간판쟁이라도 되라고 계속해서 재촉한다.

아버지와 복만의 불화는 어머니의 중재로 겨우 위태로운 지경을 넘기는 지경이다.


한 집에 사는 박씨의 딸 명순은 부자 남편에게 첩으로 시집갔지만 치장에 신경을 쓰느라

집안 형편에 도움이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명순의 삶은 행복하지도 않다.

명순과 복만은 서로 좋아하지만 돈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한 사이이다.

간판 일을 강요하는 아버지와의 의견 차이 때문에 집안은 또 소란스러워진다.


명순의 오빠 철봉은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오자마자 돈을 벌러 북쪽으로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밝힌다.

상심한 명순과 어머니를 앞에 두고, 복만은 자신도 철봉과 함께 떠나겠다고 말한다.

자유로운 곳에서 기반을 닦아 마음껏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이다.


만류하는 어머니와 깊이 상심한 명순을 뒤로 한 채 철봉과 복만은 문을 나서는데,

아버지도 뛰쳐나오며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모두 우박을 맞으며 슬퍼한다.

전통과 근대, 자유와 방종이 착종되어 혼란스러웠던 해방 후 한국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광복의 감격으로만 쉽게 일반화되어버린 해방공간을 뒤집어 보고자 한다.

긴 피지배와 전쟁의 시간이 끝난 후 대의명분에서 벗어난 한국인들은 목적지를 잃고 헛도는

방향타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런 혼란의 와중에 개인으로서 또 사회적 인간으로서 자기만의 목적지를 재설정하려 했던

그 처절한 몸부림을 잔인하면서도 코믹하게 제시하고자 한다.


* 원본 사진 관련 동영상 ->  http://www.lullu.net/data/lullu_net/bbs/view.php?id=inform01&no=991
  
4. 혜화동1번지 5기동인 소개

윤한솔, 이양구, 김수희, 김제민, 김한내로 구성된 혜화동1번지 5기동인은

2011년 봄 페스티벌 <나는 나르시시스트다>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타 극장에서 공연되지 않는 초연작으로만 기획하여

창작실험의 무대를 만들어내었다.


또한 혜화동1번지 5기동인이 공동운영하는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극장은

2011년부터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실험공간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혜화동 1번지 5기 동인은 이렇게 한다>

연출가 동인 혜화동 1번지는 직전 기수가 각자 추천한 연출가를 전원이 합의하는 방식으로

다음 기수를 선출한다. 다시 말해서 5기로 선출된 연출가들은 추천을 받고

그것에 동의하는 방식으로 모였다.


5기 동인이 가장 역점을 두고자 하는 사항은 혜화동 1번지의 연극 실험 정신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고자 하는 점이다.

물론 과거에 비해 혜화동 1번지의 치열한 실험 정신이 약화된 현실을 인정한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극복하고자 한다.


우리는 당대의 사회적 연극적 과제와 연극의 역할에 대해서 깨어있고자 한다.

매년 봄과 가을에 열릴 정기 페스티발을 통해서 발표되는 우리의 초연작들은

우리의 이러한 의지를 드러내는 공식적인 장이 될 것이다.


매 정기 페스티발은 예술감독 1인이 주관하여 진행한다.

시즌별 예술감독제는 페스티발의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 완성도를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가 수입금을 무조건 적립하기로 한 또 다른 이유는 극장의 공공성을

수행하기 위해서이다. 전국의 수십 개에 이르는 연극학교에서 배출된 졸업생 중

자기 재능을 한 번 펼쳐보지도 못하고 꿈을 접는 연출가, 배우 지망생이 얼마나 많은가.


혜화동 1번지 소극장은 젊은 연출가 및 배우, 스태프들이 데뷔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을 비롯 각종 공공성을 띤 사업들을

기획하고 수행해 나갈 것이다.


그동안 혜화동 1번지는 상업주의와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진지한 문제의식을 견지하며

작업을 해온 전통이 있다.

이는 우리 5기 동인이 계속해서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정신이다.

우리의 이러한 의지는 앞으로 계속될 공연을 통해서 드러날 것이다.

- 2011년 혜화동 1번지 5기 동인 봄페스티벌 <나는 나르시시스트다>

- 2011년 혜화동 1번지 5기 동인 가을페스티벌  <시심>

- 2012년 혜화동 1번지 5기 동인 봄페스티벌 <해방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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