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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학 원론

문예당 | 기사입력 2003/10/01 [10:49]

무용학 원론

문예당 | 입력 : 2003/10/01 [10:49]


   무용학원론

저자/역자명: 송종건

출판사명 : 금광

발행연도 : 1998년 10월 31일

가격 : 12,000원

276 (페이지)

ISBN : 8982840737  

Name 무용평론가 송종건
Subject 무용의 학문적 접근의 필요성  
Homepage http://dancecritic.com.ne.kr  

< 무용의 학문적 접근의 필요성 >


Ⅰ. 서론


영국의 문화학자 스티븐 코너(Steven Connor)는 그의 저서 ‘포스트모던 문화 (Postmodern Culture)’에서, “20세기 문화는 두개의 큰 혁명이 있었다”고 했다(Connor : 1989 : 12). 그가 말한 혁명은 첫째로는, 기존의 사회구조를 파괴하고 정치화하는 실제 혁명이고, 두 번째는, 조용하지만 더 결정적인 혁명, 즉 대학이나 문화기관에서 이의 정치성을 배제하고 학문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서구 학문세계의 학문 추구는 학제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범문학적인 접근을 이루고 있다. 이를 통해 문화의 개념은 더 넓어지고 급격히 변형된다. 아울러 학문세계와 대학에서 전통적으로 지키던 하이컬츄(high culture)와 대중문화(popular culture)사이의 간극은 좁아지고만 있다.

이로 인해 서구의 학문세계는 이제 어떤 하나의 주제를 파고들기 위해서는 역사, 철학, 경제, 정치, 사회학, 미학, 예술 사상사 등 모든 학문의 기본바탕을 전제하지 않으면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즉, 정확하고 깊은 학문적 탐구를 위해서는 모든 과목의 이해를 전문가적 지식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서구의 학자들은 끊임없이 닥쳐오는 새로운 학문의 영역에 적응해야 된다. 그리고 진실된 학문의 추구를 위해서는 새로운 영역에 단기에 몰입했다가 또 다른 영역에 용기 있게 뛰어드는 불굴의 정신을 전제하게 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서구의 학문세계에서는 연구의 질뿐만 아니라, 연구의 양도 풍부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이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폭넓고 깊게 읽어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런 서구의 학문세계에서도 근래 새로운 인문학의 시대정신을 만들어낼 대사상가가 부재하다는 걱정스러운 지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학문적 딜레마 속에서도 푸코, 데리다, 비트겐슈타인 등의 깊고 폭넓은 지성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분야의 창조적인 시각이 예민하게 살아서 꿈틀거리는 분위기라고 한다.

즉, 서구의 학문의 세계는 끊임없이 새로운 사상과 사회현상을 자신의 학문에 접목시키는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학문의 발전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는 다이나미스트(dynamist : 변화론자)와 변화를 거부하는 스태시스트(statist : 정체론자)와의 끊임없는 대립 속에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학문과 문화의 역사에서는 모든 우리사회의 분야의 결정적인 발전은 창조적 변화를 추구하는 다이나미스트들의 노력의 결실이었음을 확인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론자들은 그들의 학문적, 문화적 작업에서 창의성, 혁신, 올바른 경쟁을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한다.

이들은 학문을 지적욕구를 채우고, 지식을 섭취하여, 글로 쏟아내기 위한 실전적 행위라고 생각한다. 또한 현시대 지식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사회의 잘못된 현상에 대해 용기 있게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학문이란 정체된 사회의 분위기를 혁신하거나 왜곡된 학설을 교정시키면서 우리 사회나 학문이 지향해야 될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물론 이는 무용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무용학 연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Ⅱ. 서구 무용학의 추세


사실 서구의 무용학도 근래 10~20여 년 동안 엄청나게 변화하며 발전해왔다. 서구의 무용학자들은 학문의 뒷받침이 없는 예술은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무용을 객관적인 학문으로 만들면서, 무용학을 다른 어느 학문 못지 않은 심각한 학문으로 만들어냈다.

서구의 무용학자들은 우선 무용의 학문적 접근에서, 무용의 움직임은 결코 단순한 육체적인 움직임(physical movement)이 아니라, 이성적인 설명(reason-type description)이 가능한 동작으로 본다(McFee : 1993 : 34). 이런 전제 속에서 이들은 무용예술이 왜 가치 있는 예술인지, 혹은 무용예술이 인간의 삶(human life)에 어떻게 공헌하는지 하는 것을 학문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가 무용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이 모두 신비롭기만 하고 말이나 글로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의 무용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알고(McFee : 1993 : 5), 무용학의 연구가 근대철학과 인문학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학문적인 설득력 있는 논증이 요구된다고 본다.

따라서 이들은 무용학 탐구 방식을 학문적 논쟁 (argument)을 통한다. 이들은 그동안 무용을 이야기할 때 많은 학자인체 하는 사람들이 단지 그들의 의견이나 견해, 그리고 심지어는 대단히 위험하게 단순히 그들의 느낌을 이야기해왔다고 본다.

예를 들면 영국의 무용미학자 그래함 맥피 (Graham McFee)는 무용의 미학적 접근은 이성적 방법 (rational method)을 통한 엄격한 철학적인 탐구 (a rigorous philosophical investigation)가 필요하다고 했다. (앞의 책 : 17)

아울러 무용에서의 학문적 접근이 무용의 학문적 예술적 성격규명에서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물론 이때 객관적인 판단 (objective judgement)이라는 것이 결코 단 하나의 옳은 답을 찾는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학문이나 예술과 마찬가지로 무용의 학문적 접근에서도 객관적이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인 주장에는 언제나 열려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무용을 포함한 예술(심지어는 과학까지)의 토론에서, 공공적이며 (public), 논쟁이 가능하고 (arguable), 논리에 따라 수정이 가능한 (amenable)경우는 객관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무용의 학문적 접근에서 논리적 논쟁을 즐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무용포스트모더니즘의 학문적 논쟁을 성숙시킨 무용이론가 셀리베인즈 (Sally Banes)와 수잔 매닝 (Susan Manning)의 포스트모던무용의 예술사적 시대구분의 논쟁이 된다. 이들의 학문적 논쟁은 나중에 무용전문잡지 ‘드라마 리뷰 (Drama Review)’에 “전투화를 신은 요정 (Terpsichore in Combat Boots )”이란 제목으로 그 내용이 소개되기도 한다. (Banes & Manning : 1989 : 16)

이들은 마치 전투화를 신은 무용요정들이 학문적 전투를 이루는 모습까지 보이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재 서구의 무용학계에서는 지성미 넘치는 학문적 논쟁으로 무용의 학문적 위상을 드높이고 있으면서, 아울러 무용 예술의 객관성과 심각성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Ⅲ. 우리나라 무용학의 현실


사실 우리나라 무용교육에서 이론적 토대는 약하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올바른 의미에서 무용학의 개념조차도 수립되어 있지 못하다. 무엇이 무용학이고 무엇을 가르쳐야하는지 하는 것조차 정립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문의 빈곤이 악순환 되면서 의미 없는 논문이 양산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엄격히 보면 이는 무용 부분만 이런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전체 학문의 부진 중의 하나의 부분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국내기초과학의 기본이 되는 서울대학교 화학과에서도 해마다 4~5명의 대학원생들을, “국내 연구환경이 너무 취약해 국내에서 공부하면 큰 학문적 업적을 이룰 수 없다”(조선일보 : 2001 : 27)면서, 미국의 명문대학에 유학 보내고 있는 실정에서도 알 수 있다.

사실 무용예술의 근본은 실기이다. 실기가 없는 무용은 존재할 수가 없다. 하지만 무용을 심각한 예술의 반열에 올려서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무용의 중요성을 사회에 이야기해야 될 때는, 더 이상 무용수의 움직임으로는 되지 않는다.

따라서 선진외국에서는 무용의 이론적 접근을 엄청난 학문적 수준으로 높여 무용의 예술적, 학문적, 사회적 중요성을 사회에 각인시켜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무용이론의 강좌를 펼쳐놓고도 깊이 있고 폭넓은 강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앞에서 이미 보았지만 실제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정돈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무용학생들의 학문적 능력이 떨어져서 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책임을 학생들에게 돌리는 경우까지 있다.

바로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번 명심해야될 것은 무용의 학문적 발전이 없으면, 무용의 사회적 위상은 떨어지게 되고, 무용이 예술 중에서도 이유 없이 가장 인정받지 못하는 예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학생들의 학문적 의욕을 꺾게되고, 학생들의 사회적, 학문적 진출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야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Ⅳ. 무용의 학문적 접근의 필요성


그러면 여기서 다시 한번 무용의 학문적 접근의 필요성을 깊이 있게 생각해보자. 사실 서구에서도 무용의 이론교육을 강화시키는 것이 모든 학생들을 이론가나 평론가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근본적인 의도는 평소 학문적 수업을 통해 무용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예술에 대한 학문적 자신감을 키워주자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다양한 무용의 학문적 접근을 통해 학생들을 다양한 직종의 사회진출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무용 부문에서도 무용기획자, 무용 행정가, 무용 정책자 등 다양한 인력을 양성하는 강의가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완벽한 예술창작을 이루기 위해 예술 이론 강의도 끊임없이 병행되어야 한다.

근래 우리나라 안무가들의 예술작품의 질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있다. 이는 안무가 개개인들의 예술적 능력의 부족에도 기인하겠지만, 사실은 학교 교육에서 창의력(creativity)을 키우는 예술교육이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젊은 안무가들에게 아무런 예술적 인풋(input)을 해주지 않은 상태에서, 거미줄을 뽑듯이 아웃풋(output)만 요구한 결과라는 것이다.

흔히 현대과학혁신은 이론과 실험의 충돌사라고 한다. 즉 과학의 발전에서도 실용적인 분야의 강화를 위해 이론의 역할은 크기만 했다. 다시말 하면 과학에서도 이론이 단지 관찰의 결과를 꾸며내는 장식이 아니라, 어떤 관찰이 유용한지, 무엇을 관찰시켜야 할지 정하는 결정적인 기준이 되어왔다는 것이다.

무용에서의 학문적 접근의 필요성도 마찬가지의 논리로 설명될 수 있다. 무용에서 이론이라는 것은 무용의 예술적 실체를 더욱 강화시키면서, 무용의 발전이 어느 곳으로 가야하는지 지향점을 찾게 하고, 무용의 사회적 의미를 심도 깊게 부여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세계적 첼리스트 요요마는 하바드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첼리스트 장한나가 하바드대 철학전공으로 입학한다고 했다. 예술가들이 대학시절 동안 예술학, 철학, 사회학, 미학, 정치학, 안무학, 예술사상사 등 다양한 인문학적 접근을 이루면 그때야 비로소 자신의 예술세계에서 자신만의 심오한 내면세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Ⅴ. 결론


지금까지 본대로 무용의 학문적 접근의 의미와 필요성은 크다. 그리고 그 작업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특히 그동안 쌓아진 업적이 거의 없는 국내 무용계의 현실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끊임없는 난관을 물리치면서, 어떤 도전도 조금이라도 사양하지 않겠다는 불굴의 정신이 필요할 것이다. 우선 무엇보다도 외국의 앞서간 무용이론을 배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 무용계 전체의 어학실력을 강화시켜야 할 것이며, 본격적으로 무용학자들을 배출시켜 많은 의미 있는 무용이론 교육기관을 설립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된다.

그리고 지지부진하기 만한 한국무용 이론의 체계화를 위해 외국의 이론을 우리 전통 문화예술현상을 분석하는데 활용하여, 우리의 사상과 문화와 역사가 묻어있는 우리 전통 무용의 이론화도 시급한 문제가 될 것이다.(송종건/무용평론가/dancecritic.com.ne.kr)


< 참고문헌 >

Banes, S. (1989) Terpsichore in Sneakers : Postmodern Dance, Hanover : Wesleyan Univ. Press
Banes, S. & Manning, S. A (1989) “Terpsichore in Combat Boots” in Drama Review, Spring 1989
Connor, S. (1989) Postmodern Culture, Oxford : Blackwell
Copeland, R. and Cohen, M. (1983) What is Dance. Oxford : Oxford Univ. Press
Harrison, C. and Wood, P. (1992) Art in Theory 1900-1990. London : Blackwell
Jencks, C. (1992) The Post-Modern reader. London : Academy Editions
McFee, G. (1992) Understanding Dance. London : Routledge
조선일보, 2001년 7월 5일자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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