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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극장 - 연희단거리패

문예당 | 기사입력 2011/12/27 [14:25]

변두리극장 - 연희단거리패

문예당 | 입력 : 2011/12/27 [14:25]


획일적인 사회에 대한 바보의 저항, 삐딱이의 깽판 , '변두리 극장'은 유럽의

민중소극 카바레트 드라마이다. 딴지거는 광대, 게으른 광대, 지휘하는 광대,

서투른 광대, 노래하는 광대


카바레트 드라마는 오늘날 엔터테인먼적 개그나 말 장난과 구별되는 민중소극

양식이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등 인간의 삶 전반에 대한 비판적 유머이며

획일적 사회를 거부하는 깽판의 미학이다. 철학적 심미적 주제와 날카로운

사회비판을 위트와 유머로 표현하는 게릴라식 막간극, 혹은 촌극양식이다.

* 원본 사진 및 관련 동영상 ->  http://www.lullu.net/data/lullu_net/bbs/view.php?id=inform01&no=962

한국 공연예술계에에서도 1950년 대 이후 구봉서 서영춘 배삼룡 김희갑 등

정통 슬랩스틱 코메디를 구사하는 카바레트 연기양식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요즘 티뷔에 등장하는 난잡한 말장난과 개그와는 분명한 차별성을

지는 정통 소극이다.




카를 발렌틴의 광대극 (Kabarett  drama)<변두리 극장>

카를 발렌틴은(Karl Valentin,1882-1948)은 1882년 6월 4일 뮌헨 근교에서 태어났으며  

카바레스트, 희극배우, 극작가, 영화제작자  등 다방면에서 큰 재능을 보인 인물이다.  


1907년 1인 즉흥극 <수족관><프랑크푸르터 호프> 1924년 <익살꾼 카바레>로  큰 성공을 거두고

1930년대 말까지 베를린 등지에서 뛰어난 희극배우로 명성을 얻는다.

발렌틴은 500여편이 넘는 단막극, 촌극, 1인극, 시나리오 텍스트를 남겼다.

그는 26개 작품의 전체 공연회수가 5969회에 이른다.  

이는 발렌틴이 엄청난 대중성과 인기를 누렸음을 증명한다.


그는 단순한 희극배우가 아니었으며  인간의 삶이 가진 모순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이를 웃음을 통해  비판했던 철학과 창작력을 겸비한 예술가였다.

발렌틴은 표현방식에서도 고유한 기법을 사용해 베로톨트 브레히트와 관련되어 자주 언급된다

1919년경부터 발렌틴의 무대를 자주 찾던 브레히트는 그를 ‘위트 그 자체’이며  

‘이 시대의 강렬한 정신적 인물 중의 하나’라 평했다.

또한 자신의 역할에 거리를 둔 발렌틴의 연기는

브레히트가 요구하는 서사적 연기의 전범이라고 할 수 있다.


발렌틴은 연기형식에서 브레히트의 이론을 선취했고 그의 무대 또한 단순화 된 형태로

관객이 환상에 빠지지 않도록 함으로서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미리 실현했다.

서사극의 원칙으로서 “생소화 효과”는 “발렌틴 효과”를 의미한다고 도 할 수 있다.


카를 발렌틴은 카바레티스트로서 작가로서 특수한 경우에 속한다.

그의 예술활동은 어느 장르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공연을 하고 글을 쓰면서 또 다른 통로를 이용해 관객과 소통하고자 했다 그것은

일상의 사물들을 새롭게 인식하고자 했던 작은 박물관이다.  

발렌틴은 일상의 사물들과 공연 때의 소품들을 모은 박물관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는 일상의 물건들을 진열하면서 익숙하지 않은 제목들을 붙여

일회성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공연에 새로운 영속성을 주려는 시도를 했다.


그는 겉으로 무의미하게 드러나는 사물이 현실에서 어처구니 없는 새로운 의미로 전도되고

그 가운데 해학을 통해 민중의 삶에서 겪는 모든 불합리한 가면을 벗겨내는 그의 연기와

작품은 문학과 민중극을 연결시킨 독특한 예술이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그의 예술을 카바레라는 분야를 뛰어넘는  그리고 모방할 수 없는

하나의 현상으로 간주했다.

그의 연기는 전형적인 카바레 연기에서 벗어나 지역과 시대에 밀접한 그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을 지니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는 카바레티스트, 희극배우로서

다다이즘과 표현주의에 가까이 가 있다.


일상의 잡다한 일, 동시대의 삶 등과 끊임없이 싸움을 벌이는 그의 희극에는

어느 면에서 비극성과 비관주의가 담겨있다.

칼 발렌틴은 스스로를 해학가, 익살꾼 극작가라 불렀다.,

글쓰기와 연기를 함께 한 20세기 최초의 독어 권 팝 예술가, 바이에른의  네스트로이,

민중  희극인으로서 발렌틴은  카바레 뿐만 아니라 희극 자체의 지평을  넓힌

전 방위 예술가라 할 것이다.  - <변두리극장> 번역가  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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