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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문예당 | 기사입력 2011/11/22 [12:37]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문예당 | 입력 : 2011/11/22 [12:37]


섬세한 연출과 해석적인 재미가 더해진 니나가와만의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농염한 애정 장면에서부터, 유머러스한 유희, 정치적 결탁과 대립, 격동의 전투와 비장미 넘치는

자살 장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품어내며 정치극과 애정극,

그 사이의 미묘한 교차점을 지혜롭게 오간다.

세계가 인정한 ‘셰익스피어 거장’ 역사적 첫 내한!

   일본, 니나가와 유키오  연출

       셰익스피어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공연개요

◆ 일    시        11/24(목) ~ 11/27(일) – 총 5회

                        평일 오후 7:30 / (토) 오후 1:30 & 7:30 / (일) 오후 3:00

◆ 주최/장소        LG아트센터 (지하철2호선 역삼역 7번 출구)

◆ 입 장 권        R석 70,000 / S석 50,000 / A석 30,000원

◆ 문의/예매        LG아트센터 (02)2005-0114


◆ 협    찬        LG하우시스
        
◆ 연    출        니나가와 유키오(蜷川幸雄)

◆ 제    작        일본 Saitama Ars Foundation, HoriPro Inc.

◆ 출    연        요시다 고타로(吉田鋼太郞), 아란 케이(安蘭けい), 이케우치 히로유키(池内博之),

                하시모토 준(橋本じゅん), 나카가와 안나(中川安奈), 쿠마가이 마미(熊谷真実) 외


   * 일본어로 공연되며, 한국어 자막이 제공됩니다.

    * 공연시간: 총 3시간 20분 (중간휴식 15분 포함)


이것이 바로 오늘의 일본 연극이다!

  마침내 선보여지는 니나가와의 첫 내한 무대



세계 무대에 진출한 일본 연극의 저력, 거장의 뜨거운 예술혼과 깊은 연륜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꽉 찬 무대가 마련된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일본의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蜷川幸雄, 1935 ~).

영국의 RSC, 바비칸, 내셔널 씨어터, 에딘버러 페스티벌, 미국의 케네디 센터, 링컨 센터…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관객들과 교감을 나눠온 노장 예술가가

이웃나라 한국의 관객들을 처음으로 찾아온다.


이번 내한공연에서 선보여질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로

니나가와가 현재 예술감독으로 재직하고 있는 일본 도쿄 근교의 사이타마 예술극장에서

지난 10월 1일 초연된 최신작이다.




“가볍게 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연출가로서 전환점을 맞아야 할 때 그에 필요한 뭔가를 배우고

  흡수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첫 한국 공연이 그런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 니나가와 연출가, 2011년 3월 내한 인터뷰 중



지난 3월에 있었던 인터뷰에서처럼 한국 공연을 숙원처럼 오래 동안 바라고 준비해온 니나가와는

이번 작품을 위해 두 명의 연기파 배우들을 주역으로 캐스팅했다.


먼저 안토니 역은 니나가와의 걸작 <타이터스…>에서 주역을 맡아 세계 언론의 극찬을 받았던

명배우 요시다 코타로(吉田鋼太郞)가 맡았다. 여기에 재일한국인 3세 출신으로 숱한 차별을 딛고

일본의 여성가극단 다카라즈카의 탑스타로 활약하며 빼어난 연기와 가창력으로 수많은 팬들을 몰고

다닌 아란 케이(安蘭けい)가 클레오파트라 역으로 출연한다.


이 밖에도 옥테비어스 시저 역의 이케우치 히로유키(池内博之)를 비롯해 일본 TV와 영화,

연극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막강한 조연진들이 안정적이고 힘있는 앙상블을 통해

로마와 이집트, 두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만큼 강렬하게 타올랐던 두 연인의 사랑과

정치적 격동을 그려낼 예정이다.  


“특히 재일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밝힌 아란 케이를 위해서

이 작품을 연출하고 싶었습니다. 이 작품은 아란의 용기 있고 아름다운 삶의 방식에 대해 보내는

저의 성원이기도 합니다. 아란이 먼 고향 한국에 자부심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니나가와 연출가, 2011년 10월 월간 [객석]과의 인터뷰 중



그의 연극은 마법이다! 이 시대 최고의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

니나가와 유키오는 5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송두리째 연극에 바쳐온 그는 희수(喜壽)에 가까운

나이에도 연극, 영화를 넘나들며 젊은 후진들을 제치고 현역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연출가다. 2010년 건축가 안도 타다오,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 등이 수상했던

일본 문화훈장을 수상하며 예술가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리기도 하였다.

* 원본 사진 및 관련 동영상 ->  http://www.lullu.net/data/lullu_net/bbs/view.php?id=inform01&no=958

니나가와의 카리스마는 일본 연예계의 톱스타들마저도 그의 작품에 출연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스케줄을 비워둘 만큼 독보적이다.


그는 배우들을 엄격하고 혹독하게 훈련시키기로 유명해 기무라 타쿠야, 후지와라 타츠야, 오

구리 슌, 아오이 유우 등과 같은 일본의 유명 배우들도 마치 통과의례처럼 그의 무대를 거치고 나서야

연기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특히 작품이 시작됨과 동시에 모든 매커니즘을 동원해 순식간에 극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그의 스펙터클한 연출은 ‘니나가와 연출의 마술’이라 불릴 정도다.


‘감동도 전율도 없는 연극은 하지 않겠다’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이해하기 쉽고,

소통할 수 있는 연극을 지향하는 니나가와는 관객들로부터 폭넓은 공감대를 얻으며,

지금도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새로운 도전으로 작품 세계에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50여년 전 현대적인 무대로 이 작품을 재조명해 명성을 얻었던 ‘피터 브룩’.

   이제 그에 비견할만한 제의적인 일본식 버전을 ‘니나가와’가 선보였다.”

         - 작품 <타이터스 안드로니커스> 2006년 영국 The Guardian ★★★★



본고장 영국이 인정하고 세계가 찬사를 쏟은 ‘셰익스피어 거장’

“니나가와 연출가는 심장이 멎게 만들 것 같은 시각적 언어를 셰익스피어에 불어넣고 있다.”

       – 2009년 영국 The Guardian


니나가와는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영국, 프랑스,

미국을 비롯한 서구 무대에 활발하게 진출하기 시작했다.


1999년 외국어권 연출가로서는 최초로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The Royal Shakespeare Company : RSC)와 작업한 그는, 스트랏포드 어폰 에이번과 런던에서

<리어왕>을 장기 공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일본의 배우들과 <페리클레스>,

<햄릿>,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 <코리올레이너스>, <무사시> 등의 다양한 작품들을

연이어 선보여 찬사를 받았다.



니나가와는 일본 희곡은 물론이고 그리스 비극을 비롯한 서양 고전에도 정통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는데, 특히 영국의 문화적 자존심과도 같은 셰익스피어에 있어서는

2002년 영국 여왕이 수여한 CBE(대영제국 커맨더 훈장)가 보여주듯

본고장의 공인을 받은 거장이다.



서양의 텍스트를 다루는데 있어서 니나가와는 원작을 충실히 해석하는 한편, 일본 관객들을 고려해

때로는 가부키, 노, 분라쿠와 같은 일본 전통극의 요소를 차용하기도 한다.


특유의 비주얼을 살린 미학적인 연출, 텍스트에 내재된 가치를 찾아내는 혜안은

그의 작품이 이국적이면서도 보편적인 매력으로 언어의 장벽을 넘어

서구의 관객들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영어 원작과 일본식 해석 사이의 균형점이 어디에 있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햄릿>을 보았다는 것이다.”

             - 작품 <햄릿> 2004년 영국 The Sunday Times



“니나가와는 <페리클레스>를 위한 완벽한 연출가다.

  이 작품의 탁월함은 이야기의 인간적 가치를 부각시키는 니나가와의 극적 마술에 있다.

     – 작품 <페리클레스> 2003년 영국 The Guardian ★★★★★



로마와 이집트를 넘나드는 스펙터클한 무대, 정교한 의상과 압도적인 상징물

셰익스피어의 원작처럼 완벽하게 직조된
한 편의 무대예술


이번 작품에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작품마다 특유의 미학으로 빛나는 니나가와의 무대 예술이다.

한국의 흰 벽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니나가와는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무대를

마치 관객을 향해 펼쳐진 삼면의 흰 액자처럼 구성하였다.


순백의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미니멀한 무대는 로마 건국 신화 속 늑대의 젖을 먹는 로물루스와

레무스상, 이집트의 스핑크스와 아누비스 등 압도적인 존재감을 차지하는 각종 상징적인 조형물과

첨단 프로젝터를 이용해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처럼 로마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아테네와 시칠리아섬을 변화무쌍하게 오가며 스케일이 큰 정치극의 면모를 과시한다.


배우들을 배역에 자연스럽게 밀착시키는 정교한 의상 역시도 또 다른 볼거리이다.

그 동안 국내에서 접했던 일본 극단의 연극들이 현대 작가의 텍스트를 원작으로 하는

중소규모의 작품들이 많았다면, 고전을 기반으로 대극장 무대에서 30여명에 달하는

배우들의 앙상블로 펼쳐지는 이번 작품이야말로 아시아를 벗어나 세계에서 먼저 인정받고 있는

이웃나라 일본 연극의 현 수준을 제대로 가늠하게 해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노련한 로마의 정치가 안토니와 당당하고 화려한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

                 나라의 운명을 뒤흔든 그들의 치명적인 사랑,

                           그리고 파국을 향해 질주하는 정치적 격동의 드라마




실제 역사적 이야기에 바탕하고 있는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셰익스피어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굳이 대표작으로 손꼽힐 만한 작품은 아니다. 특히 로마와 이집트를 둘러싼 정치적 대립과

두 연인의 사랑이 자살로 치달아 버리는 파국은 다소 공허한 종말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점을 꿰뚫은 니나가와 연출가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원작 그대로 무대 위에 충실히

구현해내면서도 극적 해석의 대가답게 자신만의 차별적인 요소를 더해 더욱

흥미진진하고 완성도 있는 무대를 꾸려낸다.


당당함과 화려함, 경박함과 요염함을 오가며 불같이 화끈하고 변화무쌍한 성격의 클레오파트라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아란 케이.

베테랑 배우다운 묵직한 존재감으로 극의 중심을 잡으며 로마의 삼두정을 이끌었던 능란한 정치가에서

사랑에 눈멀어 권력도, 목숨도 잃은 한 남성으로의 몰락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안토니 역의 요시다 코타로.

그리고 이들과 대립하며 패기와 호전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젊은 옥테비어스 시저 역의

이케우치 히로유키. 이렇게 원작 희곡과는 차별적인 배우들의 매력으로 채워지고,

섬세한 연출과 해석적인 재미가 더해진 니나가와만의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농염한 애정 장면에서부터, 유머러스한 유희, 정치적 결탁과 대립, 격동의 전투와 비장미 넘치는

자살 장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품어내며 정치극과 애정극,

그 사이의 미묘한 교차점을 지혜롭게 오간다.


나라의 운명을 뒤흔들면서도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수는 없었던 성숙한 성인들의 치명적인 사랑.

그 파국적인 결말의 과정을 니나가와 연출가가 얼마나 흥미롭게 그려냈는지는 3시간 20여분이

속도감 있게 지나가는 무대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주연 배우 소개 ∽∽∽

TV와 영화, 무대에서 왕성한 연기활동을 펼치고 있는 배우 요시다 코타로

1987년 극단 AUN을 설립해 활동하고 있는 연극인이며 특히 셰익스피어에 정통한 배우로 알려져 있다.


                요시다 고타로(吉田鋼太郞)_마크 안토니 역


일본의 거장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와는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 <오델로>, <헛소동>,

<메데아>, <오이디푸스 왕>, <무사시> 등 셰익스피어뿐만 아니라 그리스 비극과 일본 현대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에서 함께 작업하며 주역으로 활약했다.


특히 2006년 <타이터스…>가 영국에서 공연되었을 당시 명연기로 영국 언론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코타로는 일본의 권위있는 연극상인 제6회 요미우리상에서 최우수 남우상에 노미네이트된 바 있으며,

제36회 기노쿠니야 연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란 케이는 재일한국인 3세로 1991년 일본의 여성 가극단인 다카라즈카(宝塚歌劇)에 입단해

연기와 가창력 모두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며 2006년 성조(星組)의 톱스타가 되었다.


             아란 케이(安蘭けい)_클레오파트라 역

다카라즈카는 흔히 ‘여배우의 등용문’으로 일컬어지는 부속 음악학교에 들어가는 것만도

수십대 일의 엄청난 경쟁률을 자랑하며, 가극단에 들어간다 해도 톱까지 올라가는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로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난관을 뚫고 2006년 성조(星組)의 톱스타가 된 아란 케이는 <왕가에 바치는 노래>,

<스칼렛 핌퍼넬>, <적과 흑>, <베르사이유의  장미> 등 여러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 원본 사진 및 관련 동영상 ->  http://www.lullu.net/data/lullu_net/bbs/view.php?id=inform01&no=958

그녀는 재일한국인 3세로서 자신의 예명을 ‘아랑 전설’의 주인공인 ‘아랑’에서 따올 정도로

자신의 뿌리를 소중히 여기고 있으며, 2009년 19년에 걸친 다카라즈카 생활을 접고 퇴단한 후

TV를 비롯해 콘서트, 뮤지컬, 연극 무대를 누비며 활약하고 있다.



“일본 연극의 산 역사!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셰익스피어 거장”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 (蜷川幸雄, 1935 ~)



contents

● INTRO

● 변절인가, 새로운 모색인가? 상업 연극으로의 전환

● 본격적으로 시작된 니나가와 연출의 ‘마술’

● ‘세계의 니나가와’로 떠오르다

●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연극을 만든다

● 눈이 황홀한 연극, 막이 오른 후 3분 안에 관객들을 사로잡아라!

● 배려하는 연극, 그의 연출은 감동과 전율로부터 시작된다

● 가장 일본적이면서 가장 세계적인 셰익스피어

● 끊임없이 자기를 혁신하는 희수(喜壽)의 거장

● 새로운 도전을 통해 연극의 존재 의의를 몸소 실천한다

INTRO

일본 연극계의 거장 니나가와 유키오 연출가는 도쿄 근교의 사이타마(埼玉)현 출신으로

유화를 그리기 위해 미대에 지망했다가 낙방한 후 1955년 우연히 신극 단체인 세이하이(靑俳)에

입단함으로써 연극에 첫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정식 단원도 아닌 연구생으로 연기를 배우면서 아베 코보(安部公房)작 <쾌속선>을 시작으로

꾸준히 연기 활동을 펼쳤던 그는, 배우로서는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하고 점차 연출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후 세이하이를 그만두고 1967년 극작가 시미즈 쿠니오(淸水邦夫)와 함께

극단 현대인극장(現代人劇場:겐다이진 게키조)을 창단한 그는, 1969년 쿠니오 작

<진정이 넘치는 경박함(眞情あふるる輕薄さ)>을 첫 연출하며 데뷔작으로 일본 연극계의 주목을 끌었다.


1971년 현대인극장이 돌연 해체된 뒤 1972년 사쿠라샤(櫻社)를 창단한 그는,

이후 실험극에 몰두하며 신주쿠(新宿)를 거점으로 사회성 짙은 작품들을 연이어 공연하며

확고부동한 연출가로서의 위상을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 원본 사진 및 관련 동영상 ->  http://www.lullu.net/data/lullu_net/bbs/view.php?id=inform01&no=958

그러나 당시 일본 연극계에서는 신세대적인 희극감각의 연극이 점점 대두하고 있었고,

사회 비판적이고 투쟁 일변도의 정치연극만을 줄곧 선보여왔던
사쿠라샤는 무대와 관객을

연결해주던 일체감의 측면에서 점점 어긋나가고 있음을 느끼면서 정체성의 혼돈을 겪기 시작했다.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이 끝난 밤시간에 공연을 하면서 스크린이 훼손되는 것을 피해

무대장치를 매번 새로 설치하고 철거해야 하는 소극장의 열악한 시스템에서도

이내 고단함과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깊은 절망감을 느낀 니나가와는

결국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변절인가, 새로운 모색인가? 상업 연극으로의 전환

전환점은 바로 1974년 도호(東寶) 연극부의 프로듀서 나카네 타다오(中根公夫)와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타다오 프로듀서는 셰익스피어의<로미오와 줄리엣>을 대극장인 닛세이(日生) 극장에서

연출해달라고 니나가와를 끈질기게 설득했고, 연출 초반부터 시각적인 요소인 무대를 중시해왔던

그로서는 소극장을 벗어나 자신의 능력을 펼쳐 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끌릴 수 밖에 없었다.


색다른 만남에 의해 새로운 표현을 받아들이자는 니나가와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이는

결국 사쿠라샤의 해체로 이어지고 말았다.


신극과 소극장 운동으로 확연하게 구분되던 당시 일본 연극계에서 상업 연극과 손을 잡고

연극을 하는 것은 특히나 급진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을 지닌 단원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고,

자신들의 근본적인 연극 정신에 대한 배반이며 변절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니나가와의 소극장 운동 시기는 막을 내리게 되었고, 상업 연극으로의 전환에 대한

연극계의 비난과 상업 연극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향후 그의 활동에 있어

어느 정도 심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니나가와 연출의 ‘마술’

1974년 니나가와가 처음으로 대극장에서 연출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기존 상업 연극의 상식을

깨뜨리는 신선한 작품이었다. 우선 무대 위에는 고대 로마의 투기장을 연상시키는 3층으로 된

반원형의 장치가 설치되었고, 종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무릎 아래 다리를 절단한

장애인과 걸인들의 행렬, 애원하며 북적대는 군중들 속에서 상류 계급의 젊은이들이 칼을 뽑아 들고

싸우기 시작하는 역동적인 개막 장면부터 관객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자신의 연출력에 대해 확고한 인상을 심어주는데 성공한 니나가와는

이후 상업 연극을 주된 활동의 장으로 삼아 참신한 표현의 세계를 개척해나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재능과 열정뿐만 아니라 확실한 기술을 갖춘 배우들이 있었고,

대규모의 장치를 비롯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연극 세계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모든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


여기에 나카네 프로듀서의 전폭적인 지원은 연출가 개인으로서도 극단 운영에 필요한

경제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오로지 연극을 만드는 데에만 진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이전에는 공연을 홍보할 때 주연 배우들에 초점을 맞추곤 했지만

나카네 프로듀서는 스타의 인기에 의존하기 보다는 연출가인 니나가와를 부각시키는 전략을 취했다.


1980년 초연된 <니나가와 맥베스>에서는 아예 공연 제목에 연출가의 이름을 넣었을 정도로

실험성이 가득하고 스펙터클한 ‘니나가와 연출의 마술’을 보려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이 점차 늘어났다.


-> 무대를 커다란 불단으로 구성했던 <니나가와 맥베스>(1980)

‘세계의 니나가와’로 떠오르다

이후 1980년대에 들어서기까지 <리어왕>, <오이디푸스왕>, <왕녀 메디 아>, <햄릿>, <치카마츠 신쥬 이야기> 등

니나가와의 대표작이라고 손꼽을 만한 작품들이 여럿 쏟아져 나왔지만 그의 전환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에 대한 일본 내의 평가는 일견 정당하거나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좋은 편이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니나가와는 나카네 프로듀서의 적극적인 권유에 따라 1983년부터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드디어 그 해 7월 니나가와의 첫 해외진출작 <왕녀 메디아>가

그리스 아테네의 야외극장에서 공연되었다.

* 원본 사진 및 관련 동영상 ->  http://www.lullu.net/data/lullu_net/bbs/view.php?id=inform01&no=958

모두 남성들만으로 이루어진 이 공연은 역시 히라마키 지로(平幹二朗)라는 남자배우에게

여주인공 메디아 역을 맡겨 복수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자신의 자식들을 살해해버리는

과격한 성격의 남성적인 면을 절묘하게 활용, 여성의 연기보다 역설적으로 훨씬 더 비극성을

확대시키는 효과를 거두었고,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유럽의 시각에서 볼 때 그저 연극의 변방에 불과했던 일본이 이렇게 그리스 비극의 본고장인

그리스에서 그들의 작품을 일본어로 공연해 큰 감명을 주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라 할 만 했다.


이 작품은 해를 바꿔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공연되며 막을 내린 후에도 30분 가까이

-> 니나가와의 첫 해외 진출작 <왕녀 메디아>


커튼콜이 계속되는 등 뜨거운 찬사를 얻었고, 이어 <니나가와 맥베스>, <템페스트>와 같은 작품들도

런던, 에딘버러, 뉴욕, 밴쿠버, 홍콩 등지에서 세계의 관객들과 만났다.


니나가와는 1987년 영국 런던의 로열 내셔널 씨어터(Royal National Theatre:RNT)가 주최한 연극제에서

스웨덴의 잉그마르 베르히만(Ingmar Bergman) 독일 페터 슈타인(Peter Stein) 등과 함께

세계 4대 연출가로 초청되어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영국 공연계 최고의 상인 올리비에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고, 1989년에는 <치카마츠 신쥬 이야기>를 RNT에 올려 서양 고전이 아닌

일본의 연극을 처음으로 해외에 소개했으며, 1991년에는 시미즈 쿠니오 작 <탱고, 겨울 끝에>의

영어판을 영국 배우들과 작업해 웨스트엔드 극장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이렇게 8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기까지 니나가와는 연출가로서의 명성을 굳건히 하며

일본 연극의 저력을 세계에 알렸다. 일본 내에서도 다시 그를 인정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연극을 만든다

전환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던 니나가와가 충실히 상업 연극의 규칙을 따랐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연출법에는 소극장적인 감수성에서 우러난 파격이 있었다.


사쿠라샤 시절처럼 그는 연습 첫날부터 대본 리딩은 하지 않고 바로 리허설에 들어가 배우들을 자극하고

선동하곤 했다.


초기 사회참여적인 연극을 하다가 전환 이후 셰익스피어와 그리스 비극이 중심이 된 서양의 고전들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면서 니나가와의 연극관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무엇보다 확고한 점은 관념이나 추상에 빠져 감동도 전율도 없는 연극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가부키를 보러 다니면서

연극적 감수성을 기른 니나가와는 자신의 부모와 같은 평범한 일반인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연극을 만들고 싶어했다.


평론가나 특수층이 아니라 소박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 피곤한 현실을 잊고자

공연장을 찾는 그들로 하여금 꿈과 같이 화려하고 황홀경에 빠질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그의 대전제가 되었고, 이는 대중이 연극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여러 연극적인 장치를

개발하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니나가와는 소극장 연극의 실험정신을 상업주의 연극과 연결시킴으로써

예술성과 흥행성이 적절히 조화된 고급스런 대중 연극을 지향해갔고,

대중이 중심이 된 그의 연극관은 결국 그의 작품이 일본적이라는 개별성을 넘어서

세계적이라는 보편성과 개방성을 동시에 획득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었다.


-> 니나가와 연출, 가부키 버전의 셰익스피어 <십이야>의 커튼콜


눈이 황홀한 연극, 막이 오른 후 3분 안에 관객들을 사로잡아라!

이러한 니나가와의 연극관은 자연스레 그에 맞는 연출법을 발전시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그는 지나치게 논리적이거나 대사에 의존한 나머지 머리에 호소하는 근대 리얼리즘 연극을

비판하면서 눈으로 보면서 황홀감이 들 수 있는 '눈의 연극'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에 따르면 연극이 시작된 후 3분 안에 극의 모든 매커니즘을 동원해서 관객들을 일상으로부터

연극 속으로 몰입시켜야만 한다.


특히, 소극장에서 대극장으로 연출할 무대 공간이 넓어지면서 관객과의 일체감 상실이라는 측면에서

두려움을 갖게 된 니나가와는 시각적인 무대미술과 청각적인 음악, 소리에 집중해 대극장에서의

공연 문법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의 연극을 보면 초반에 엄청난 군중장면과 음악, 조명이 동시에 상당히 현란하게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철저한 계산 아래 강렬하면서도 때로는 도발적으로 색감을 구사하는 한편, 서양의 고전들을

연극화하면서도 불단(佛壇)이나 벚꽃 등과 같이 일본 관객들에게 익숙한 장치들을 활용해

아름다움을 창출하는 동시에 연극의 핵심적 주제를 시각적인 상징으로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소리와 음악을 통해서도 정서나 감정의 베이스를 전달해 연극의 템포나 속도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관객들과 공감대를 확보해낸다.


이렇게 작품의 주제를 아주 선명하게 시각화 또는 청각화시키는 그의 탁월한 연출 능력은

일본 관객뿐만 아니라 외국 관객들에게도 언어를 뛰어넘어 직관적으로 작품의 핵심을

전달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배려하는 연극, 그의 연출은 감동과 전율로부터 시작된다

1999년 비영어권 연출가로서는 최초로 영국의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The Royal Shakespeare

Company: RSC)와 <리어왕>을 작업했던 니나가와는 이 작품을 스트랏포드 어폰 에이번과 런던에서

장기간 공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일본의 배우들과 <페리클레스>, <햄릿>,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 <코리올레이너스>,  <십이야> 등 다수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현재까지 꾸준히 선보이며 찬사를 받고 있다.


2002년에는 영국 여왕이 CBE(대영제국 커맨더 훈장)을 수여했듯, 니나가와는 영국의 문화적 자존심과도

같은 셰익스피어에 있어서 본고장의 공인을 받은 거장이다.

이런 그가 셰익스피어를 연출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바로 셰익스피어를 일본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본적인 얘기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니나가와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관객들이 갖고 있는 기억 또는 감성과

교차될 수 있는 공감대를 찾았다. 그리고 그러한 공감대가 확보되었을 때에만

셰익스피어를 연출하는데 나섰다.


니나가와는 보통 자신의 연출 작업은 희곡을 읽으며 느낀 감동이나 전율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 감동이 대체 무엇이며,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가, 그것을 찾기 위해서 나는 연극이라는 형식을

택한 것입니다. [...] 연출가라는 것은 아마 가장 먼저 감동해서 뛰기 시작하는 러너(runner)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 니나가와 유키오


“나는 셰익스피어를 마치 서양의 전설처럼 일본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 니나가와 유키오


이에 니나가와는 선택한 대본을 거의 손대지 않고 그대로 공연하는 편이며,

셰익스피어 같은 경우에도 지나치게 서양적인 수사법으로 인해 이해하기 힘들거나

공감하기 힘든 비유 같은 것들을 잘라내는 것 외에는 원 텍스트에 충실하기 때문에

그의 연극은 관객이 따라가기가 쉬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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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상징 장치와 미학, 스펙터클로 눈길을 사로잡는 니나가와의 무대

  (왼쪽: <코리올레이너스>, 가운데 / 오른쪽: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


가장 일본적이면서 가장 세계적인 셰익스피어

1978년 <햄릿>을 통해 작품을 부분적으로 일본화하는 것을 처음으로 시도하기 시작했던 니나가와는

2009년에는 <십이야>를 가부키 버전으로 선보이는데 이른다.


이러한 그의 셰익스피어에 대해 시각적인 일본화로 서양 사람들의 이국적인 취향에 어필하거나

해외 수출용이라며 폄하하는 시각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쉽고 편안하면서도 세련미와 높은 완성도까지 갖춘 작품을 다수로 연이어 창출해내는 것은

완숙한 예술적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또한 니나가와가 서양 번역극을 그대로, 서구의 스타일을 흉내내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일본 또는 아시아 사람들의 생활감각과 역사적 문맥에 기초해 다시 읽고, 주체적으로 해석해

고유의 양식과 미학으로 무대에 올리는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은 충분히 높이 평가할 만 하며,


전통문화유산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창조하는 측면에 있어서도 일본의 현대 연극계가 성공을

거두며 그 독특한 정체성과 보편적 예술성을 세계 연극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연극계에도 시사해주는 점이 많다고 할 것이다.


“11세기 스코틀랜드가 16세기의 일본으로. 이것은 단순히 시대적 배경이 바뀌었다는 문제가 아니라

스타일과 감각의 문제라 할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원전 그대로 고수하면서 니나가와는 <맥베스>를

사무라이 연극으로 탈바꿈시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성을 잃지 않았다.”

- The New York Times, 1990

끊임없이 자기를 혁신하는 희수(喜壽)의 거장

니나가와는 지난 2010년 10월 건축가 안도 타다오,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 등이 수상했던

일본 문화훈장을 수상, 예술가로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를 누리며 그야말로

일본 연극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5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송두리째 연극에 바쳐온

그는 희수(喜壽)에 가까운 나이에도 연극, 영화를 넘나들며 젊은 후진들을 제치고 현역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연출가로 손꼽힌다. 체계적인 연극 교육을 받지 못한

그가 오늘날 세계적인 연출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자신의 실력에 의해서였으며,

부단한 자기혁신 노력의 결과였다. 젊은 시절 강한 신념과 자신감에 넘치면서도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선동하기 위해 그가 집에다 "니나가와 천재"라는 문패를 걸었던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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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1984년에 시작한 니나가와 스튜디오(現 니나가와 컴퍼니)는 젊은 연극인들과 함께 다양한

작품에 도전하여 실험적인 무대를 소개하는 한편, 배우들에 대한 엄격한 훈련을 통해 꾸준히 젊은

연출가와 배우들을 육성시키는 터전으로서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때로는 연습실에 재떨이가 날아다닐 만큼 혹독하면서도, 따스함과 섬세함을 잃지 않는 그의 카리스마는,

특히 연기력을 인정받고자 하는 젊은 배우들에게 있어서는 그의 작품에 캐스팅되는 것

자체가 큰 영광으로 받아들여질 정도이며, 후지와라 타츠야, 오구리 슌, 아오이 유우와 같은

일본 연예계의 톱스타들마저도 그의 부름에 응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스케줄을 비워둘 만큼 독보적이다.


새로운 도전을 통해 연극의 존재 의의를 몸소 실천한다

최근 니나가와는 두 가지 새로운 도전을 통해 연극의 존재 의의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2006년 자신이 예술감독으로 재직하게 된 사이타마 예술극장 산하에

골드 씨어터(Gold Thteatre)를 창단한 것이며,

또 다른 도전은 차세대 젊은 배우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넥스트 씨어터(Next Theatre)의

창단에 나선 것이다.


특히, 시니어 극단인 골드 씨어터는 무대에서 마지막 열정을 불태운다는 의미에서 실버(silver)가

아니라 골드(gold)를 붙였고, 단순한 심심풀이 수준이 아니라 주5일, 하루4~5시간씩 강도 높은 

연습을 통해 매년 정기적으로 작품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55세 이상의 나이에 연극에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단원을 공개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자마자 1,200여명이나 지원을 했고, 그들로부터 많은 가능성을 발견한 니나가와는

결국 당초 예정된 정원보다 두 배가 넘는 47명을 엄선했다.


이렇게 해서 발탁된 단원들의 평균 나이만 해도 66세가 넘었고, 최고령은 80세였으며

아나운서, 주부, 스님, 자위대원 등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었던 만큼

무대에서 인생의 경험에서 우러난 남다른 존재감과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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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균 연령 66세 이상의 노년층으로 구성된 사이타마 ‘골드 씨어터’


이렇게 니나가와의 끊임없는 도전 정신과 늦깎이와 신인 연기자들의 뜨거운 열정은

기성 연극의 매너리즘을 타개하고 새로운 바람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니나가와는 지난 2011년 10월 1일 자신의 24번째 셰익스피어 연출작이자 첫 내한 작품이 될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자신이 예술감독으로 재직하고 있는 사이타마 예술극장에서

초연해 올렸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모두 무대화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는 현재 일본 최고의 아이돌 스타인 마츠모토 준(松本潤)을 캐스팅,

11월에 초연될 테라야마 슈지(寺山修司) 원작 <아, 황야 あゝ、荒野>를 연습하고 있다.

또한 내년에는 런던 올림픽을 기념해서 영국의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가 주최하는

월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 참가해 <심벌린(Cymbeline)>을 선보일 예정이다.


니나가와 유키오   첫 내한 공연을 초청하기까지…

                           글. 이현정(LG아트센터 공연기획팀장)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2003년 셰익스피어의 <페리클레스>를 통해서였다.

동경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사이타마 극장에서 초연한 직후 런던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며

별 다섯 개 만점의 평가를 받으며 “니나가와는 <페리클레스>를 연출하기에 완벽한 연출가”라는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몽환적이면서 환상적인 무대와 일본 스타일을 간직한 채 화려하면서도

우아하게 디자인된 의상, 배우들의 섬세한 표현과 동시에 힘있는 연기가 오랫동안 잊을 수 없게

만든 작품이었다.


3시간 반이나 되는 공연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루할 틈 없이 빠르게 흘러갔고,

단순히 아름다운 비주얼로만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곳곳에 펼쳐진 다양한 장치들과

상징들은 제 각각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보는 재미 이상의 것을 주었다.


원작을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빠르게 전개되는 스토리와 군더더기 없는 세련된 연출은

수세기 이전에 쓰여진 캐릭터들이 생생하게 눈 앞에 살아나오게 하며 극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드는 마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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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명성만 들어왔던 일본의 대표적인 연출가 니나가와의 작품은 그렇게 눈에 들어왔고,

이후 제작사를 통해 <햄릿>, <신토쿠마로>, <로미오와 줄리엣> 등 예전 작품의 비디오를

구해 보며 그의 작품세계에 빠져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1년 후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로 또 한번 니나가와 연출의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푸른색을 기조로 화려한 무대장치가 빛났던 <페리클레스>와는 달리 이번 작품은

흰색의 무대와 흰색의 조각상, 흰색의 의상들이 모던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주는 작품이었다.


너무나 복잡한 인물 관계도와 간혹 막장드라마를 무색하게 하는 내용 전개 때문일까,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 받는 위대한 작가이면서도 의외로 막상 셰익스피어의 다양한 작품이

연극화 되지 않는 우리 연극계 상황에서 국내에서는 잘 공연되지 않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매력과 더불어 뮤지컬 버금가는 스펙터클한 무대와 힘 있는 배우들의 연기,

스토리를 끌고 가는 그의 힘있는 연출력 등이 분명 우리 관객들,

우리 연극계에도 큰 자극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 중에서도 이제까지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페리클레스>를

꼭 소개하고 싶었다.


마침 니나가와 연출가도 한국 공연을 소망하고 있던 터라 처음부터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진행되었다.

그의 오랜 파트너이자 일본의 대형 프로덕션 컴퍼니인 ‘호리프로’에서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니나가와 씨의 작품을 한국에 소개하기에 적당한 공연장을 찾기 위해

2002년 서울을 방문해서 우리 극장을 보고 갔다고 했다.


(물론 아는 사람도 없이 무작정 방문한 극장이라 외관과 로비만 보고 갔다는…)

전화 한 통화라도 했으면 진작에 만났을텐데, 역시 일본 사람들답군 싶었다.


그래서 제작사를 찾아가자 무척 반가워 했고, LG아트센터가 자신들이 니나가와의 작품을

공연하게 된다면 꼭 서고 싶은 극장이라는 이야기도 전했다.

그렇게 해서 2003년부터 그의 작품을 한국에서 공연하기 위해 협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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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가장 하고 싶은 작품은 <페리클레스>였지만,

전속 배우들과 함께 레퍼토리 시스템으로

작품을 제작하거나 작품 제작 후 일정 기간 투어를 하는 극단이 아니고, 매 작품 마다

일본의 유명 영화, 연극 배우들을 프로젝트별로 섭외해 일정 기간 공연을 한 후 공연이 종료되면

바로 다음 작품을 만드는 니나가와 씨의 작품 제작 특성상

이미 끝난 작품을 가지고 투어를 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었다.



따라서 한국 공연을 성사시키려면 신작 제작 때부터 참여하기로 계약을 한 후

일본 공연 직후 공연을 하지 않으면 배우나 스태프의 스케줄을 확보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처음 한국에 소개하는 입장에서 작품을 보기도 전에 공연을 결정한다는 게 쉽지 않지만 도리가 없었다.


그저 니나가와의 작품을 믿고 추진하는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항상 런던과 뉴욕 공연도 그렇게 했고, 작품의 질이 고른 연출가라 믿고 가자고 결정을 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어마어마한 초청비였다.

이제까지 했던 어떤 세계적인 단체보다도 비싼 개런티뿐 아니라 움직이는 배우,

스태프들의 규모가 매 작품 60명이 넘었다.

아무리 일본과 한국의 항공료가 타 유럽에 비해 저렴하다 하더라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알아보니 런던과 뉴욕의 유명한 극장도 우리와 사정이 다르지 않아 자국이든 일본에서든

지원금 없이 극장 비용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 본국인 영국에서 호평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내고 있는 연출가의 입장에서

런던 공연을 포기하고 지원금을 우리 쪽으로 돌리기도 어려워하는 형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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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러저러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거의 매년 마지막 순간에 작품을 포기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렇게 7년이 흘러 버렸다.  

올해로 77세가 되는 니나가와 유키오는 더 이상 한국 공연을 미룰 수는 없다는 결단을 내렸다.

결국 일정 부분의 비용을 일본측에서 감수하며 한국 공연을 공동제작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많은 비용이 드는 일이었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그의 작품은 영영 소개되기 어려울 것 같아 동의했다.


그 사이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 여타 아시아 극장들에서 그의 공연을 하고 싶다는

초청 제안이 밀려왔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니나가와는 아시아 다른 지역의 공연은 아무리 조건이 좋다 해도

한국 공연 이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인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시점에 바로 이웃나라인 한국에서

공연되지 못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한국 공연이 결정되었고,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할 작품으로 그는 재일 한국인 아란 케이가 출연하는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선정했다.

일본의 여성국극 단체인 ‘다카라즈카’의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유명 배우이면서

자신이 재일 한국인 3세라는 것을 당당히 밝히며 활동했던 아란 케이를

항상 용기 있는 아름다운 배우로 눈여겨보았던 니나가와의 도전이자 배려이기도 했다.

* 원본 사진 및 관련 동영상 ->  http://www.lullu.net/data/lullu_net/bbs/view.php?id=inform01&no=958

얼마 전 일본 사이타마 극장에서의 초연을 마치고 후쿠오카, 오사카 공연을 거쳐

11월 한국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니나가와의 첫 한국 데뷔작은 이렇게 한국 관객을 만나고 싶다는

연출가의 큰 염원과 의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작품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한국 관객들을 염두에 두고 시작되었다.

무대와 작품이 가진 정서, 캐릭터도 한국을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말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바람, 그리고 각자의 희망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그것이 오랜 산고 끝에 태어나는 아이처럼 이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카가와 안나(中川安奈)_옥타비아 역


             아란 케이(安蘭けい)_클레오파트라 역


                요시다 고타로(吉田鋼太郞)_마크 안토니 역


                이케우치 히로유키_옥테이비어스 시저 역


                    쿠마가이 마미(熊谷真実)_차미언 역



                    하시모토 준(橋本じゅん) - 도미시어스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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