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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

문예당 | 기사입력 2011/02/16 [12:44]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

문예당 | 입력 : 2011/02/16 [12:44]


새로운 개념의 공연이란 이런 것! 휴식시간 없이 105분간 시와 노래, 비디오와 세련된 무대 이미지를

신비롭게 오가는 괴벨스 특유의 비범한 연출과, 움직이지 않는 듯 움직이는, 시를 읊듯 노래하는

정중동(靜中動)의 힐리어드의 존재가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는 이 음악극은 연극이든 연주회든 공연에

대해 관객들이 가진 기존 관념을 모두 깨버리고 어디서도 쉽게 마주칠 수 없는 충격적인 경험이 되어

오랫동안 지성과 감성에 큰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숭고한 목소리, 세련된 무대


힐리어드 앙상블 음악극


       하이너 괴벨스 작곡, 연출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



“I went to the house,

                    but did not enter”


         공연 개요

        일시 및 시간:  2011년 3월 26일(토) – 27일(일) 오후 7시

        주최 및 장소:  LG아트센터 (지하철 2호선 역삼역 7번 출구)

        입장권 가 격:  R석 9만원, S석 7만원, A석 5만원, B석 3만원

        공연러닝타임:  1시간45분 (인터미션 없음)

        문의 및 예매:  02-2005-0114


“매료되던, 당황하던, 충격적이던 간에 매우 흥미로운 105분임은 분명하다.“– 영국 더 타임즈


20세기 세 문호, T.S.엘리엇, 모리스 블랑쇼, 사무엘 베케트의 시(詩).

무대 위엔 2층 벽돌집 한 채, 외로운 호텔 방,

  그리고 <오피시움>의 숭고한 목소리, 힐리어드 앙상블…



연극인지 콘서트인지 퍼포먼스인지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무대미학으로

유럽 공연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줌과 동시에 논란을 불러일으켜온
독일의 작곡가 겸 연출가

하이너 괴벨스(Heiner Goebbels, 1952년생).

그가 중세와 현대에 집중하는 레퍼토리로 음악계에서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영국의

아카펠라 남성 보컬 콰르텟힐리어드 앙상블(The Hilliard Ensemble, 1974년 창단)과 만났다.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I went to the house, but did not enter)”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제목의 이 음악극은 괴벨스의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뚜렷한 줄거리는 없다.

   괴벨스가 고른 세 문호의 시(詩)는 자아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뚜렷한 내용도, 이미지도

   떠올리게 하지 않는다.


무대는 시에 따라 작은 살롱, 거대한 벽돌 2층집, 쓸쓸한 호텔 방의 장면으로 이어지며, 힐리어드

앙상블만이 유일한 출연진이 되어 나직이 시를 읊거나 반주 없이 아 카펠라로 노래한다.


하지만 기이하리만치 고요한 세 장면, 긴장감을 주면서도 우스운 텍스트, 신비로운 노래와 움직임,

꿈결 같이 선명한 이미지, 낯선 분위기에서 낯익은 목소리를 듣는 충격…

이 모두가 합쳐져 총체적인 효과가 되어 관객에게 전달될 때는, 난해하게 느껴지는 시의 내용이나

무대 위 2층집의 의미, 힐리어드의 역할이 무엇인지 파악하려 했던 애초의 의도가 무의미해질 만큼

강렬한 인상이 되어 뇌리에 남는다.




“무엇을 보러 가는지 확신할 수 없을 때, 예술적 경험에 관객은 더욱 열려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확신할 수 없을 때야말로 우리의 고정된 지각구조를 뿌리째 변화시키니까요.

    [...]

  무대엔 살롱 하나, 집 한 채, 호텔방 하나가 있지만 그것이 뭔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 보게 될 것은 듣게 되는 것만큼의 경험일 것이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

  나는 좁은 의미를 담은 구체적이고 상세한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고자 합니다.“ – 하이너 괴벨스


새로운 개념의 공연이란 이런 것!

휴식시간 없이 105분간 시와 노래, 비디오와 세련된 무대 이미지를 신비롭게 오가는 괴벨스

특유의 비범한 연출과, 움직이지 않는 듯 움직이는, 시를 읊듯 노래하는 정중동(靜中動)의

힐리어드의 존재가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는 이 음악극은 연극이든 연주회든 공연에 대해

관객들이 가진 기존 관념을 모두 깨버리고 어디서도 쉽게 마주칠 수 없는 충격적인 경험이 되어

오랫동안 지성과 감성에 큰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I went to the house, but did not enter”아시아 초연!

2008년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초연한 하이너 괴벨스의

I went to the house, but did not enter는 원래 힐리어드 앙상블의 연주회 프로그램의 일부로

20분짜리 곡을 만들어달라는 위촉 요청에서 발전하여 1시간45분의 정규 공연 길이로 진화했다.


오페라 가수와는 전혀 다른 발성의 힐리어드의 이 독특한 아이덴티티에 매료된 하이너 괴벨스는

20세기 초반 위기의 자아상을 그린 세 편의 시를 골라 ‘혁신’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

자신의 작품세계 가운데서도 가장 고요하고 사색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다.


또한 이 작품은 고전음악 애호가들이 즐겨 듣는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음악이 아닌, 17세기

이전의 중세 종교음악이나 20세기 현대에 집중하는 독특한 레퍼토리로 유명한 힐리어드 앙상블이

처음으로 시도하는 무대가 있는 공연이라는 점에서도 커다란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 작품은 에든버러 페스티벌 초연 이후 런던 바비칸 센터, 독일 베를린 페스티벌,

비엔나 페스티벌 주간(Wiener Festwochen), 홀랜드 페스티벌,

파리 가을 페스티벌(Festival d’Automne) 등 유럽 유수의 페스티벌에서 호평 속에 공연하였으며,

오는 3월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서울과 통영(‘2011 통영국제음악제’ 폐막작)에서

한국 관객과 만난다.


또한 힐리어드 앙상블에게는 2002년 재즈 색소포니스트 얀 가바렉과의 <오피시움> 공연으로

국내 관객을 처음으로 만난 이후 9년 만의 내한이며, 하이너 괴벨스 작품으로는

2007년 의정부음악극축제에서 선보였던 <하시리가키> 이후 두 번째로 국내에 소개되는 작품이다.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 (I went to the house, but did not enter)”

* 연출, 작곡: 하이너 괴벨스

* 출     연: 힐리어드 앙상블

* 텍  스 트: T.S. 엘리엇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1917)

            모리스 블랑쇼 “낮의 광기(La folie du Jour)”(1949)

            사무엘 베케트 “Worstward Ho”(1982)

* 초    연: 2008년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 메인 제작 Main Producer: 스위스 로잔느 비디 극장(Théâtre Vidy-Lausanne)

* 공동 제작 Co-Producers:

    영국, 2008 에든버러 페스티벌 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 2008

    독일, Schauspielfrankfurt

    이탈리아, Teatro Comunale di Bolzano / Stadttheater Bozen

    룩셈부르크, Grand Théâtre de Luxembourg

    프랑스, Musica, festival international des musiques d’aujourd’hui de Strasbourg

* 공동위촉 Co-commissioners :

    미국, Carolina Performing Arts at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

    미국, Hopkins Center, Dartmouth College, Hanover

* 투어후원 Tour support: 스위스 예술기금 Pro Helvetia

* 음악저작권 Copyright:  © Musikverlag G. Ricordi & Co. Munich 독일


힐리어드 앙상블 The Hilliard Ensemble



* 홈페이지: http://www.hilliardensemble.demon.co.uk/index.html

    데이비드 제임스 / 카운터테너 DAVID JAMES countertenor

    로저스 코비-크럼프 / 테너 ROGERS COVEY-CRUMP tenor

    스티븐 해롤드 / 테너 STEVEN HARROLD tenor

    고든 존스 / 바리톤 GORDON JONES baritone

“네 명의 목소리의 놀라운 조합은 한마디로 너무도 경탄스러워 마치 다른 세상의 소리를 듣는 것만 같다.

  의심의 여지 없이 힐리어드 앙상블은 세계 최고의 보컬 앙상블의 하나다.”– 영국 The Globe and Mail



영국의 힐리어드 앙상블(The Hilliard Ensemble)은 고음악(early music) 연주에 전문화된

영국의 남성 보컬 콰르텟이다.

1974년에 창단된 이 그룹은 엘리자베스 시대 채색화가인 니콜러스 힐리어드(Nicolas Hilliard, 1547-1619)

이름을 빌어 명명되었다.


힐리어드 앙상블이 집중하고 있는 레퍼토리의 상당 부분이 니콜러스 힐리어드가 활동하던 시대에 들을 수 있었던

음악이라는 점에서 연유한다.


힐리어드 앙상블은 소규모 성악 그룹 가운데 세계 정상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오케겜, 팔레스트리나,

모랄레스 등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음악과 더불어 고전주의, 낭만주의 음악은 건너뛰고 20세기 이후의

현대음악에서 뛰어난 명성을 누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경쟁자가 없다.


힐리어드의 독특한 스타일과 정교한 음악성은 중세 및 르네상스 레퍼토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르보 패르트, 존 케이지, 기야 칸첼리, 하인츠 홀리거 등 우리 시대 중요한 작곡가들이 이들에게 헌정하는

레퍼토리에서도 많은 음악애호가들을 사로잡고 있다.


1988년 이후 힐리어드 앙상블은 메이저 레이블이 감히 도전하지 않는 과감한 레퍼토리를

독특하게 세련된 음향으로 소개하며 전세계적인 매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독일 ECM 레이블과 손잡고 녹음활동을 하고 있다.


ECM이 발굴하여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에스토니아 출신의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의 Passio을

1994년에 처음으로 내놓은 이후 그의 Litany, 기야 칸첼리의 Abii ne viderem, 스티븐 하르트케의 Tituli

를 비롯하여, 다양한 중세 및 현대음악을 선보이며 새로운 사운드를 갈구하는 애호가들을 사로잡아 왔다.


하지만 힐리어드 앙상블을 보다 대중적인 위상으로 끌어올린 앨범은 뭐니뭐니해도 단연

<오피시움(Officium> (1994)이다.


중세의 모랄레스나 패로탱 등의 성가를 부르는 힐리어드의 보이스 위로 노르웨이 재즈 색소포니스트

얀 가바렉(Jan Gabarek)의 매혹적인 색소폰 선율이 유유히 떠다니듯 흐르는 전례 없는 컨셉의

이 음반은 유럽 여러 국가의 팝 차트에 오르는 한편, 전세계적으로 150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면서 ECM의 베스트 셀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 음반의 인기로 그 연작인 <므네모시네 (기억의 神, Mnemosyne)>가1999년에 발매되었으며,

또 다른 연작인 <새로운 오피시움(Officium novum)>이 2010년에 발매되었다.

또한 독일의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크리스토프 포펜(Christoph Poppen) 및

소프라노 모니카 마우히(Monika Mauch)와 녹음한 (2001) 역시 평단과 애호가들

모두에게서 찬사를 받았다.


이 음반은 헬가 퇴네(Helga Thoene) 교수의 연구를 바탕으로 J.S. 바흐의 파르티타 D단조 BWV1004와

코랄 가사의 일부를 독특하게 엮어 거대한 샤콘느에서 그 정점을 이루게 하여 기악과 성악을 통합시키는

특별한 컨셉의 음반이다. 이 음반은 높은 찬사 속에 뉴욕 타임즈가 2001년 “올해의 클래식 음악”으로

선정하였다.


힐리어드 앙상블의 가장 최신 프로젝트는 하이너 괴벨스의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로

2008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아방가르드한 무대 있는 콘서트로 초연한 이후 유럽과 미국의

유명 공연장에서 선보이고 있다.


1999년 진은숙의 “Miroirs des Temps”를 켄트 나가노가 지휘하는 런던필과 초연하기도 한

힐리어드 앙상블은 BBC심포니와 패르트의 Litany를 공연하였고, 제임스 맥밀란이 위촉한 Quickening을

앤드류 데이비스 경의 지휘로 초연하는 등 현존하는 작곡가의 관현악과 보이스를 위한 곡의

연주도 활발하다.

2010년 9월 힐리어드 앙상블은 새로운 프로젝트로서 런던필 및 합창단과 함께 마테오 다미코의

Flight from Byzantium를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세계 초연하였으며, 기욤 뒤페의 세 곡으로 구성된

Moribus et genere; Vergene bella;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성모 교회의 탄식(Lamentatio sanctae matris

ecclesiae Constantinopolitanae)를 공연하여 호평받았다.


폴 힐리어, 폴 엘리엇, 데이비드 제임스가 창단한 힐리어드 앙상블은 1980년대 후반에

힐리어가 떠날 때까지 단원들 구성이 유동적이었으나 1990년이래 핵심 단원은 데이비드 제임스,

로저스 코비-크럼프, 존 포터, 고든 존스이 핵심 단원으로 활동했다.

1998년 존 포터는 스티븐 해롤드로 변경되었다.

이들의 음반은 음악전공 학생들과 음악감상 교과목을 위한 크레이그 라이트의

“Listening to Music” 교과서에도 포함되어 있다.

        

하이너 괴벨스 Heiner Goebbels



연출가, 작곡가

        * 공식 홈페이지: www.heinergoebbels.com  

독일을 대표함은 물론 유럽 공연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로 통하는 연출가 겸 작곡가인

하이너 괴벨스(Heiner Goebbels)는 1952년 노이슈타트/바인슈트라세에서 태어나 1972년부터 지금까지

프랑크푸르트를 근거로 활동하고 있다.

사회학과 음악을 동시에 공부한 그는 70년대 중반 ‘급진 좌익 브라스 밴드(Radical Left Wind

Orchestra)’를 창단하여 음악을 통해 정치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으며, 하르스, 크리스 커틀러,

크리스토프 안더스와 함께 아방가르드 록 그룹 ‘카시버(Cassiber, 1982-1992)’를 만들어

유럽과 아시아, 북미 대륙 등에서 순회공연을 하였으며, 5개의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다양한 연출가의 음악극과 영화음악, 그리고 발레음악 등을 작곡하며 연출 기법을 습득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나갔다.

80년대 중반부터 그는 자신의 오디오 연극을 연출과 동시에 작곡하기 시작했다.


주목을 끌기 시작한 그의 작품 대부분이 동독 출신의 작가 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 1929-1995)와의

밀접한 작업과 우정의 결과물로, 대규모 무대극(Verkommenes Ufer(Waste Shore, 1984),

Die Befreitung des Prometheus(The Liberation of Prometheus, 1985))에서

소규모 작품(오디오 연극과 콘서트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오랫동안 경계를 나눠서 바라보았던 연극과 오페라 사이의 틈을 매꾸려는 그의 시도는

철학자 키에르카고르, 소설가 로브그리예, 팝 가수 프린스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음악극

“반복(La Reprise, 1997)” 및 앙상블 모데른을 위해 만든 음악극 “Black on White(Schwarz

auf Weiss, 1996)” 등을 낳았으며, 계속해서 진화하여 국내에서도 공연된 바 있는

거르트루드 슈타인의 텍스트와 비치 보이스의 노래가 바탕이 되었던 “하시리가키(Hashirigaki)”,

이번에 한국에서 공연 예정인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I went to the house, but did not enter)”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예술활동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준 인물로 작가 하이너 뮐러와 베르톨트 브레히트,

그리고 작곡가 한스 아이슬러(Hans Eisler, 1898-1962)를 꼽고 있으며, 특히 아이슬러의 작법은

한 사람 안에 여러 가지 관심사가 담겨 있기에 정치, 역사, 수학에서부터 미술, 철학에 이르는

여러 가지 상이한 영역 안에서 작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괴벨스에게 보여주었다.


따라서 그의 활동영역은 음악, 연극에만 머물지 않고, 보다 넓은 현대 예술 분야에 참여해 왔다.

그는 카셀에서 열린 Documenta X 미술전에서 음악극 스케치인 “뱀에 물려 죽어가는 남자의 풍경

(Landscape with man being killed by a snake)” (1997)으로 참여했으며,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Timeios” 와 “Fin de Soleil”라는 사운드 설치물을 만들었고(2002), 공연자나 연주자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자신의 첫 극 작품인 공연 설치물 “Stifter’s Dinge”(2007)를

만들어 큰 주목을 받았다.


한편 1988년 이후 하이너 괴벨스는 앙상블 모데른과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을 위해

실내악을 작곡해 왔으며, 2001년과 2004년 두 차례에 걸쳐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Surrogate Cities – 최우수 현대음악상 부문, Eislermaterial – 최우수 소규모 앙상블

연주 부문). 1999년 이후 그는 기센에 있는 Institute for Applied Theatre Studies의 교수로

재직해 왔으며, 2006년부터 헤센 연극 아카데미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2002년 괴벨스는 자신의 첫 저서인 “무대화로서의 작곡(Komposition als Inszenierung

(Composition as Staging)”을 발간했다.


하이너 괴벨스 해외 인터뷰 발췌

   이태리 Il Giornale della Musica, November 2008

Q. 무대에서 보게 되는 작품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달라.

HG: 하이너 괴벨스

    무대에 살롱 하나와 집 한 채, 호텔방 하나를 보게 될 거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뭔가를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따라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네요.

     당신이 보게 될 것은 듣게 되는 것만큼의 경험일 것이고, 무엇이 더 중요한지

     나는 말할 수가 없을 겁니다. 세트 디자이너인 클라우스 그렌베르크와 나는 그냥 구체적이고

     상세해서 좁은 의미를 담게 될 수 밖에 없는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고자 합니다.

Q. 그리고 힐리어드 앙상블이 무대에 등장하죠?

HG 지난 30년간 중세 음악을 노래하는데 익숙한 힐리어드의 4명이 연극적인 환경에서 공연하는 것은

   분명 처음입니다. 그리고 아주 잘해주고 있지요. 나도 그들 자신도 놀랐죠!

Q. 언제나 당신은 상이한 표현 방식을 결합시켰는데요, 가장 먼저 음악, 하지만 연극, 문학, 시, 댄스까지도.

HG 이번엔 댄스는 없지요. 이 모든 요소들이 똑같이 중요성을 지니길 바랍니다.

Q. 이 작품에선 어떻게 이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었는지...

HG 나는 관객이 무엇을 보러 가는지 완전히 확신할 수 없을 때, 즉, 콘서트인지 공연인지 설치물인지

   연극인지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을 때가 가장 좋습니다.

   각각의 포맷은 다른 종류의 지각모드를 요구하지요.

   음악을 들을 때와 텍스트를 들을 때 이미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공연은 이 두 카테고리 사이에 존재하는 불확실성에 대한 것입니다.

     – 텍스트인지 음악인지 – 특히 베케트의 작품에서 그러하지요.

        나는 즐겁게 짜증나는 이러한 순간에서 관객은 예술적 경험에 더욱 열려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순간들이 우리의 통상적인 지각구조를 깊숙이 변화시키니까요.

      아마도 어떻게 해야 할지 당신은 정확히 모를 수 있습니다.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보다 음악의 성격을 주의 깊게 듣는 것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두 가지는 서로 상충하는 것인가? 어떻게 결정을 해야 하나? 무엇을 더 신뢰해야 할까,

       내용인가 형식인가? 단어인지 말하는 톤인지? 작곡가인지 시인인지? 소리인지 이미지인지?


Q. 문학작품과 그것을 무대에서 이용하는 것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HG 나는 이 문학작품에 곡을 붙여 무대에 올릴 때도 그 작품을 읽을 때 갖게 되는 상상의 즐거움과

    자유를 지속시키려 합니다. 나는 이것이 거트루드 스테인의 Hashirigaki나 엘리아스 카네티의

    Eraritjaritjaka에도 적용 되었기를 바랍니다. 두 작품 모두 비(非) 극적인 작품이었죠.


   즉 읽혀질 목적으로 쓰여졌지, 극을 만들려고 쓰여진 게 아니죠.

   무대용으로 만든 텍스트가 무대에서 말하여지는 것을 ’보게’ 될 때, 우리는 배우/가수로

   그 텍스트를 알아봅니다. 하지만 비(非)극적인 작품을 들을 때는 그 텍스트는 여전히 우리

    머리 속에서 일어날 수 있지요. 그것이 내가 이 비(非)극적인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Q. 이 프로덕션을 위해 당신의 선택한 두 명의 작가는 ’위기’라는 아이디어와 분명 관련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의 생애가 비록 수십 년 떨어져있긴 하지만, 20세기 철학의 변화, 포스트-나치적 사고,

    ’신의죽음’ 이후 분열된 세계(적어도 첫 번째 작품은 기독교 신앙을 갖기 전의 엘리엇)에 대한

      공통된 감성을 회고합니다. 왜 이 작가들을 선택했나요?


HG 당신 말이 맞습니다. 세 작품 모두 – 서로 매우 다르긴 해도 - 사실은 망설임과 실패를 다루고 있죠.

    는 사실 연가라고 하기 어렵고, 모리스 블랑쇼의 스토리는 매우 혼란스럽고,

     베케트의 작품은... 이게 대체 뭐지? 산문시? 기도문? 호칭기도?

    내가 이 작품들을 선택한 이유는 모두 미학적 형식으로 이를 반영하고 있어서

                              나의 작곡의지를 북돋웠기 때문이죠.

Q. 이 결정은 당신의 철학적, 종교적 사고와 어떻게 관련됩니까?

HG 스스로 종교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힐리어드 앙상블의 노래를 들으면,

   완전히 그 배경을 떼놓을 수는 없을 겁니다. 이 성악이 발전되고 우리 대부분이 성장해온 환경 말이죠.

    저의 경우는 엄격한 카톨릭 배경이지요. 하지만, 기 디보르가 ”스펙터클의 사회“라 칭했던

    우리의 미묘한 분위기에서는,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의식(rituality)과 명상의 중요성을 구축해가는

    새롭고 세속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도움이 되고 안심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사실 내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조용하고 연약한 작품이죠.

Q. 제목에 대해 설명해달라.

HG 이 문구는 모리스 블랑쇼의 이야기(’이야기’라 할 수 있을까요?)인 “낮의 광기“에서 따왔습니다.

    이미 이 문장 하나에서 독자의 기대를 실망시키려는 그의 의도를 읽을 수 있죠.

    카프카의 작법과도 연관이 있고요. 그리고 프랑스에서 카프카를 알린 초기 비평가의 한 명이 바로 블랑쇼였죠.

    관객의 기대를 실망시키면서 동시에 새로운 기대를 불러일으키려는 나의 의도를 추측해볼 수 있을 거에요.


Q. 2명의 영국 작가와 한 명의 프랑스 작가. 그들과 독일 작곡가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유럽 문화의 공통적인 뿌리를 믿으십니까?

    유럽의 문화는 영감의 주요 원천인가요, 아니면 유럽 밖에서도 찾나요?

HG 나는 내가 모르는 것에 더욱 끌립니다. 그래서 그리스, 아프리카, 이란, 일본 음악인들과 작업을 했지만,

    나의 유럽식 관점을 숨기지는 않습니다. 모호하고 무의미하고 신봉하기 어려운 공통점을 고집하기 보다는

   우리가 모르는 사람, 우리가 모르는 것들을 존중하고 인내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블랑쇼는 “상대방은 당신의 형제가 아니다“라고 했죠.

Q. 자주 남용되는 단어인 ’포스트모더니즘’을 사용해 봅시다. 당신에게 그것의 미학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작업도 이 카테고리에 해당하나요?

      ’포스트 모던’ 작곡가는 ’열린’ 작곡가와 비슷한 말일까요?

HG 아닙니다. 그 말은 뭐든 가능하다, 강력한 기준을 놓치면서 다소 임의적인 방식으로 일하는 작곡가들에게

   손쉽게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내 생각에/바라건대 그런 류에 내가 속하는 건 아니길...

   예술적 선택과 반성을 위한 이 기준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연출가가 말하는 작품 소개

“우리 목구멍이 부풀어 올라 산에서 막힘 없이 뚫린다.  (그럼에도) 우리가 노래를 쏟아내지 않는 것이

    불가사의다.” – 프란츠 카프카 “산으로의 소풍(Excursion into the Mountains)”

세계적으로 유명한 힐리어드 앙상블과 함께 생각해 낸 이 연출된 콘서트(staged concert)의 제목은

이미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이 제목 속에는 어쩌면 하이너 괴벨스의 음악-극-문학작품의 비밀이 자리하고 있는지 모른다.


볼거리(spectacle)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아니면 부족하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관객의 주의를 모으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힐리어드 앙상블의 독보적으로 강렬한 연주는 – 그들은 중세 음악을 노래해 왔다.

– 오페라 무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가창 스타일과는 현격한 차이점을 드러내는 훌륭하게 절제된

모습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매력적인 가창 스타일은 하이너 괴벨스가 스위스 로잔 비디 극장에서 자신의 크리에이티브 팀과

발전시킨 이 작품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는 세 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연출된 콘서트(staged concert)다.

각각은 독립적인 장면으로 세 편의 20세기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한다.


확연히 독립적이라 하더라도 이 다양한 작품들에는 한가지 공통된 주제가 있다.

조각조각 나버린 무명의 “나(I)“가 여러 사람의 목소리와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독자들에게 명확히 정의된 역할이나 성격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버리게 한다.


여러 가지 성격을 가지는 이들의 언어는 어떠한 안정감도 약속해주지 않는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각각의 작품은 시간 순의 내러티브(이야기) 형식을 버리고 있음을 보여주며,

관객이 스토리 텔링의 행위를 스스로 완성시킬 때, 이야기의 역설적인 의미만이 그 가치를 갖게 된다.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는 어쩌면 비(非)영웅적인 주인공 – 칸트가 말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무리“ - 이 절대 떠나지 않는 여정이 될 지도 모르겠다.

  어떤 곳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세 번의 프레임으로 이루어진 여정 – 그것은 모든 곳도 될 수 있지만,

  아무 곳도 아닐 수 있다.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는 젊은 T.S. 엘리엇의 가장 유명한 시 중 하나다.

제목은 슬프게 운명 지워진 과업을 암시한다. – 옹졸해 보일지라도 정확한 이니셜의 사용은

사랑의 노래라 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이 연가가 긍정으로 시작 – “그럼 이제 갑시다, 당신과 나.“

- 한 반면, 프루프록이 진정 그의 방을 떠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이 모순은 다른 두 작품의 주요 맥락과도 일치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보시오!“ 모리스 블랑쇼의 “낮의 광기“에서 누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인가?

경찰? 환자, 의사, 간호사, 법? 만약 이것이 자백이거나 심문이라면, 누구의 잘못인가?

그리고 누가 누구의 얼굴에 유리잔을 던졌는가? 이야기? 아니다, 절대로.

마지막으로 사무엘 베케트의 “Worstward Ho“에서 마주하는 소용돌이는 가장 혁신적인 도전일 뿐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단어, 사인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촘촘히 짜여진 시적 언어로 된 베케트의 “더 멋진 실패“가 없다면, 어떤 것이 진정으로 끔찍하게

잘못될 수 있을까? 그 미학적 형식의 유토피아.

하이너 괴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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