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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도진 연출 - 바냐 아저씨

문예당 | 기사입력 2010/03/27 [16:03]

레프 도진 연출 - 바냐 아저씨

문예당 | 입력 : 2010/03/27 [16:03]


도진의 연극은 현대연극이 잃어버린 중요한 기능을 복원시켰다. 즉 감동력이다.

감탄은 있지만 감동이 없는 연극, 그것이 현대연극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도진의 연극은 감동을 생산한다.

연극이 원래 갖고 있었던 본질적 기능을 회복시켜줌으로써 그는 우리에게 새롭게

느껴진다. 현대연극의 역설이고 도진의 도진의 이유 있는 반항이다.


레프 도진 연출



상트 페레트부르크 말리극장


  
바냐 아저씨



상트페테르부르크 말리극장, 레프 도진 연출

  안톤 체홉바냐 아저씨

이 시대 연극이 존재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를 깨닫게 해 주는 연출가, 세계가

사랑하는 연극의 거장
레프 도진. 그가 이끄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말리 극장이

2001년 <가우데아무스>와 2006년 <형제자매들>에 이어 2010년 5월 안톤 체홉의

<바냐 아저씨>로 다시 돌아온다.


러시아의 국보급 연출가, 레프 도진이 그려낸 체홉

레프 도진은 ‘바냐 아저씨’를 체홉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다이아몬드’(정수)로 꼽는다.

그가 스스로 고백하기를 ‘20년 동안 계속 생각해 왔으나 감히 손을 대지

못하였다가’ 2003년 드디어 무대화했다. 그의 오랜 기다림과 숙고는 체홉 연극이

담고 있는 인간성에 대한 다각적이고 깊은 통찰을 놀랍도록 디테일하게, 그리고

더할 수 없이 명징하게 그려내고 있다.


사랑과 상실, 인생의 무상함과 그럼에도 또 다시 견뎌내야 하는 삶.

레프 도진과 상트 페테르부르크 말리 극장은 ‘바냐 아저씨’를 통해 우리 각자가

어떻게 그 순간들을 살아내는지 들여다 보게  해 줄 것이다.

                               

◈ 러시아, 골든마스크상/ 연출상(GOLDEN MASK Award for Best Director) 2004

◈ 러시아, 골든마스크상/ 연기상(GOLDEN MASK Award for Best Actor) 2004

    - Sergey Kuryshev (바냐 역)

◈ 이탈리아 비평가상/외국작품상(The Prize of Italian Critics for Best Foreign Production) 2004



공연 개요

공연 일시 : 5.5(수) ~ 8(토)

            수 6pm / 목, 금 8pm / 토 4pm


가격                R 70,000 / S 50,000 / A 30,000 won

공연시간                총 3시간(인터미션 포함)

주최/장소        LG아트센터

문의/예매        02-2005-0114 / www.lgart.com


작                안톤 체홉(Anton Chekhov)

연출                 레프 도진(Lev Dodin)

무대디자인        데이빗 보로브스키(David Borovsky)



“인생은 빠르게든, 느리게든 어느덧 흘러 지나가고, 인간은 보물과도 같이 소중한

  자신의 시간을 잘 살아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갈 수도 있었지만

  가지 않았던 삶의 다른 길들을 상상해 보기 시작한다.


  그 다른 삶 속에서는 비밀스런 꿈들이 실현되고 희망이 이루어지며 가장 달콤한

  환상들이 현실이 된다. 그리하여 그는 과거를 소각시키고 현실을 부정하고, 갈 수

  있었지만 가지 않았던 삶에 자신을 완전히 내어준다.


삶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간극은 더욱 예민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모순은

비극으로 자라난다. 시간은 흐르고 마침내 그는 선택과 마주하게 된다.


삶을 완전히 거부하거나 아니면, 신 또는 운명에 의해 당신에게 주어졌으나 그가

홀로 오롯이 짊어지고 왔던 삶을 자신의 의지와 성격(personality)으로 계속

살아낼 용기를 발견하거나.


체홉은 이 파라독스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는 놀라운 다정함과 때로 거침없는

무자비함으로 이를 분석했다. 이것은 체홉의 연극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바냐 아저씨’를 단순하지만 영원한 주제를 가진, 단순하지만 영원한

멜로디로 창조해낸다.” - 레프 도진 / 체홉의 바냐 아저씨에 대하여


“말리를 위대한 극단으로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바냐 아저씨에서 보여주듯이

  인간 감정의 정수를 잡아내는 디테일의 힘이다.” – Guardian 5.21 2005


“레프 도진의 연출은 미학적으로도, 주제의식에 있어서도 모두 장인의 완벽함과

  세심함을 발한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지적인 통찰력과 결합되어 있고, 인간성에

  대한 체홉의 관점을 명확히 포착해 냈다. 이것은 바냐 아저씨의 결정판이며 이후에

  나올 다른 버전들이 기준으로 삼을 작품이다.”

– Charlotte Loveridg / CurtainUp (Internet Theater Magazine)



Cast / Maly Theatre of St. Petersburg

알렉산드르 블라지미로비치 세레브랴꼬프: 퇴임교수 - Igor Ivanov

엘레나 안드레예브나: 그의 부인 27세 - Ksenia Rappoport

소피아 알렉산드로브나(쏘냐): 그와 전처 사이의 딸 - Elena Kalinina

마리야 바실리예브나 보이니쯔까야: 교수 전처의 모친, 3등관의 미망인

                                  - Tatiana Shuko

이반 뻬뜨로비치 보이니쯔끼: 그녀의 아들(바냐) - Sergei Kurishev

미하일 리보비치 아스뜨로프: 의사 - Piotr Semak

일리야 일리이치 쩰레긴: 몰락한 지주 - Alexander Zavialov

마리나: 늙은 유모 - Vera Bikova

일꾼 - Alexander Koshkarev



안톤 체홉 바냐 아저씨

바냐 아저씨는 1899년 10월26일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스타니슬라브스키 연출로

초연되었으며 체홉이 1889년에 저술한 <숲의 정령>을 개작한 희곡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본래 이 작품은 당시 러시아 최고의 권위를 지녔던 말리극장에서 초연하려 하였으나

연극-문학 위원회가 작품의 여러 부분을 수정하기를 요구하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신생극단인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초연하게 되었다.


이후 <바냐 아저씨>는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가장 대표적인 레퍼토리가 되었다.


고리키는 체홉에게 ‘바냐 아저씨를 보고 여자처럼 울었습니다.

저는 예민한 것과 거리가 먼 사람인데도 말입니다…. 바냐 아저씨는 아주 대단한

작품을 완전히 새로운 드마라 예술의 형상이고 대중의 멍한 머리를 때리는

해머입니다.’라고 작품을 본 소감을 편지로 전한 바 있다.




참고리뷰 - 레프 도진의 <바냐 아저씨>

      A Russian Revolution

                   by Paul Taylor / The Independent / 2005 리뷰 중 발췌

대부분의 우리 연습과정은 텍스트에 들어가기 이전에, 희곡 속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느끼고 탐험하는 것에 할애된다.’고 도진은 밝힌다.


환멸에 대한 위대한 드라마 중 하나인 이 작품에 관해서는 그 과정이 더욱

고통스럽고 혼란스럽다.


47세의 바냐는 자신의 인생을 그가 한 때 숭배했던 세레브랴코프의 영지를 지키는

데 바쳤다. 그러나 그의 기대가 눈앞에서 무너져 가고 그 고통은 세레브랴코프의

아름다운 부인, 엘레나에 의해 더욱 심해진다.


도진은 ‘우리는 삶을 임의적인 시점에서 멈출 수 없다.’는 진리에 근거하여

그 이후와 그 이전에 관심을 가졌다. 예를 들어 2막에 숨을 멎게 하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일반적인 바냐 아저씨는 폭풍우 치는 밤의 장면이 세레브랴코프가 피아노

연주를 못하게 했다는 김빠지는 뉴스와 함께 끝난다.

그런데 여기서 도진은 이 뉴스에 대한 반응의 시간을 훨씬 길게 갖는다.

이는 대단히 체홉적이다.


도진은 엘레나 역을 맡은 크세니아 래포포트에 대해 ‘그녀의 신경조직으로 인물을

이해하는’ 배우라고 평한다. 래포포트의 연기는 체홉의 인물이 황량함과

떠들썩함 사이를 왔다 갔다 할 때 내부적으로 절망이라는 하나의 상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999년에 말리극장이 바비칸에 체홉의 플라타노프를 올렸을 때 플라타노프 역을

맡았던 세르게이 쿠리쉐프가 바냐 아저씨에서 다시 바냐 역을 맡았다.

도진에 따르면 바냐가 지적인 면에서, 관능적인 면에서 모두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 모두를 놓쳤다는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극은 흐릿해진다.

그가 섹시하지 않으면 그는 그저 엘레나와 가능한 무엇이든 해보려는 바보로

밖에 안 보인다.


이 작품에서는 도진의 유연성과 공간적 시간적 한계를 깨는 능력 또한 돋보인

배우들이 장면을 전환하는 역할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눈에 보이고 느껴지도록

어떤 장면은 다른 장면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상징은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여러 개의 짚단이 무대 위쪽에

매달려있다.

이는 바냐가 절망적인 관능의 갈망에 꾀병을 부리고 있을 때 해야 할 농장의 일은

계속 넘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마지막 장면에 이 짚단들은 마치 올가미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도진은 말한다. ‘당신이 체홉을 더욱 특별하게 대할수록 당신은 더 보편적인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이 그의 속임수이자 그의 미스터리이다. ’




레프 도진상트 페테르부르크 말리극장

                                              번역: LG아트센터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유산 위에 실험적이면서도 진보적인 연극언어를 펼쳐온

레프 도진은 1983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말리극장의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이래,

<모스크바의 하늘>, <집>, <형제 자매들>, <플라토노프 – 제목없는 희곡>,

<체벤구르>, <갈매기> 등 주옥 같은 레퍼토리로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이름없는

작은 극장에 불과했던 말리 극장을 세계적인 예술극장으로 키워냈다.



레프 도진은 이미 러시아 연극계 최고 권위의 황금 마스크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것을 비롯해 피터 브룩, 하이너 뮐러, 피나 바우쉬, 아리안느 므누슈킨

등이 수상한 바 있는 유럽 연극상을 수상하였고, 영국 로렌스 올리비에상,

프랑스 비평가상, 이탈리아 UBU 등 세계 유수의 연극상을 다수 수상하며,

명실공히 세계 연극계의 거장으로 존경 받고 있다.

  
피터 브룩은 말리극장을 ‘세계 최고의 앙상블’이라고 칭한 바 있다.


완벽하게 구현된 인물들, 그리고 그 관계 속에 존재하는 뛰어난 앙상블.

레프 도진의 연극이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배우들의 연기를 실재하는 삶으로

믿게 하는 힘, 연극을 통해 나 자신의 내면을 보게 만드는 힘을 발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레프 도진은 객석에 앉은 이들이 가진 평가의 잣대를 무장해제시키고, 생생한 삶의

진실을 마음 가득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만든다.


“도진의 연극은 현대연극이 잃어버린 중요한 기능을 복원시켰다. 즉 감동력이다.

  감탄은 있지만 감동이 없는 연극, 그것이 현대연극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도진의 연극은 감동을 생산한다.

  연극이 원래 갖고 있었던 본질적 기능을 회복시켜줌으로써 그는 우리에게 새롭게

  느껴진다. 현대연극의 역설이고 도진의 도진의 이유 있는 반항이다.”  – 김윤철 / 연극평론가


연출가 소개. 레프 도진(Lev Dodin)



러시아의 연극 전통을 집대성할 거장으로서의 성장

말리 극장의 예술감독 레프 도진(Lev Abramovich Dodin)은 1944년 시베리아에서

태어났다. 2차 대전을 피해 시베리아에 거주했던 그의 가족은 전쟁이 끝나자

레닌그라드(現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였다.


도진과 연극의 만남은 그의 유년 시절에 이루어졌다.

메이어 홀드(Meyerhold)의 제자로서 탁월한 연극 교육자였던

두브로빈(Matvey Grigorievich Dubrovin)이 연출가로 있던 레닌그라드 청년 관객의

극장(Leningrad Young Viewers’ Theatre)에서 연극을 공부하기 시작한 도진은,

고교 졸업 후 레닌그라드 연극원(Leningrad Theatre Institute)에 입학하여

연극 연출을 전공하였으며 그 곳에서 스타니슬라브스키(Stanislavski)의 오랜

수제자였던 보리스 존(Boris Zon)을 사사하였다.


러시아 연극계의 두 거물로부터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연극인으로서 가장 이상적인

교육을 마친 도진은 1966년 첫 연출작인 투르게네프작의 <첫 사랑>을 시작으로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및 해외에서 다수의 작품을 연출하며

유능한 연출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세상이 빨라질수록 예술은 천천히 가야한다

도진과 말리 극장의 인연은 1975년부터 시작되었다.

객원 연출가로서 카렐 차펙(Karel Chapek)의 '약탈자 The Robber'를 통해

신선하고도 깊이 있는 해석으로 주목을 받은 도진은 1980년 아브라모프(Abramov)의

<집 The House>을 통해 러시아 연극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1983년 말리 극장의 상임 예술감독으로 안착하는데 성공한다.


예술감독으로서의 도진은 소설이나 서사시를 가리지 않고 연극을 위한 문학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 탁월한 안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의 취임 이후 첫 작품인 <형제자매들 Brothers & Sisters>은 작가 아브라모프의

사망 직후 시베리아 마을 콜호스(집단농장)의 일상으로부터 깊은 감흥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이 작품의 성공은 러시아를 벗어나 세계 진출로까지 이어졌다.


도진은 특히 고전과 현대문학, 소설과 서사시 등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연극화할 문학작품을 선별하는 데 있어 탁월한 안목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단순한 텍스트 선택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위한 연구와 리허설에 장시간을

투자하는데, 이것이 바로 말리 극장을 오늘날의 세계적인 성공으로 이끈 비결이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 배우와 연출가들은 갑작스런 검열과 기습을 당하곤 했었는데

이로 인해 때로는 어떤 작품을 초연하기 위해 한 시즌 동안이나 기다려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시스템이 한편으로는 나태함과 삼류작을 양산하기도 했던 반면 도진과

말리 극장처럼 최고의 재능과 열정을 가진 예술가들에게는 긍적적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준비하는데 장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던 덕에 도진은 작품에 좀더 완숙을 기할 수

있었고, 배우들을 데리고 멀리 작업을 위한 여행을 떠날 수도 있었다.


<형제자매들>의 경우에는 극단 전체가 작품의 배경이 되는 러시아 북부의 마을을

찾아가 수개월 동안 그 곳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노래하고, 사투리를 배우며

생활하였고, 체홉의 <벚꽃 동산>을 준비할 때에는 체홉이 살았던 시대의 분위기를

작품에 스며들게 하기 위해 옛 시대의 모습이 남아있는 러시아의 최북단 마을에

가기도 했다.


이는 모두 독창적인 사고와 말하기를 체득하기 위함이었고 그 결과 작품 속에

과감하면서도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담아낼 수 있었다.




“말리 극장은 세계 최고의 앙상블이다”피터 브룩 (Peter Brook)

지난 23년간 도진이 말리 극장을 이끌어 오면서 이루어놓은 업적 중의 하나는

배우들로 하여금 뛰어난 앙상블을 창조하도록 해낸 것이다.

1967년 이후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 연극 아카데미 연극연출과의 교수와

학과장으로 재직해온 그는 연출가로서 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탁월한 이력을

지니고 있는데, 현재 말리 극장의 단원들은 도진의 옛 제자들과 현 제자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타니슬라브스키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배우들을 훈련시키는 도진은 배우들로

하여금 즉흥극, 음악, 무용, 체조 등을 병행하면서 수개월에 걸쳐 집중적인

리허설을 갖도록 한다.


이러한 방식은 학교와 극장 사이에 긴밀한 연계가 형성되도록 만들었는데

<가우데아무스>나 <폐소공포증>같은 작품들은 바로 학생들과의 수업을 통해서

탄생된 것들이다.


극장의 일부분으로서의 ‘학교’와 학교의 연장이 되는 ‘극장’.

이러한 연계는 말리 극장을 언제나 젊고 신선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영혼의 언어로 인간 실존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러시아인들에게 연극은 유흥이나 오락이 아니라 현실이자, 계몽, 학습을 위한

장(場)이며 때로는 일종의 신앙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인간 영혼과 실존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도진의 작품들은

언제나 깊은 통찰력과 감동으로 놀라움을 선사한다.



도진에게 있어 배우의 훈련은 단지 테크닉과 연습, 메소드의 문제로

축소되지 않는다.

그것은 심성과 신경체계의 훈련, 즉 느낌과 감각, 감수성의 훈련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도진은 테크닉 뿐이거나 피상적이기만 한 연기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며

배우들에게 영혼으로 말할 것을 요구한다.

영혼으로 말하면 신체는 영혼을 따라온다는 것이 그의 굳은 믿음이다.


영혼의 언어는 번역이 필요없다.

바로 그것이 러시아 뿐만이 아니라 런던, 뉴욕, 파리, 시카고 등 전세계의

관객들로 하여금 이들의 연극에 강렬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원인인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고,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며,

마음 속을 들여다보게 만들고 있다.


“러시아에서나 외국에서나 사람들은 예술에서 진지함과 성실함을 찾습니다.

아무도 사람들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관객들의 생각,

분투, 열망 등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처럼

10시간이나 계속되는 작품을 인내심을 가지고 앉아 보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배우들은 단순히 배역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특출한 열정과 성실함을 가지고 오늘날의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들에

대한 개인적인 가치관을 이 세계와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의 작품들은 무엇보다도 그것들을 깊이 느끼고 이해할 줄 아는 관객들을

위한 것입니다.
“ – 레프 도진


세계 최고 권위의 유럽 연극상을 수상한 최초의 러시아인

도진은 연출가와 교육자로서의 탁월한 업적으로 모국 러시아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소비에트 연방과 러시아의 국가연극상, 대통령상,

트라이엄프상, 스타니슬라브스키 연극상을 비롯해 연극 분야의 최고 영예인

골든 마스크 국립연극상을 세 차례나 수상하기도 했다.


서유럽으로 진출한 1988년 영국의 로렌스 올리비에상 수상을 시작으로 프랑스

문학예술훈장을 수여받은 도진은 지난 2000년에는 세계 연극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인 유럽연극상을 수상함으로써 거장으로서의 위상을 인정받았다.  


유럽연극상(Europe Theatre Prize)은 1986년 제정되어 유럽연합(European Union)이

후원하는 상으로 유럽 내 연극과 연극 관련 지식의 보급을 확산시키고, 평화의

상징으로서의 문화교류를 확대시키려는 목적을 띠고 있다.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이해를 보여준 문화적 이벤트를 수행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수여되는 이 상은 유럽극장연합이 주관하며 국제적인 심사를 통해

수상자가 결정된다.


피터 브룩(Peter Brook)을 비롯하여 조르지오 스트렐러(Giorgio Strehler),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피나 바우쉬(Pina Bausch) 등 역대 수상자의

명단만 보아도 이 상이 갖는 독보적인 권위와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앞서 열거한 수상자들이 모두 유럽 출신이거나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인데 반해, 변방인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도진에게 수상의 영광이 돌아간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 평가되었다.  


도진은 오페라에까지 연출 영역을 확대해왔는데 연출 작품으로는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의 <엘렉트라 Elektra (1966,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살로메 Salome (2006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 / 2003, 프랑스 파리)>,

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가의 레이디 맥베스 Lady Macbeth of Mtensk (1998, 이탈리아 플로렌스>,

차이코프스키의 <스페이드의 여왕 The Queen of Spades (1998,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마제파 Mazepa (1999, 이탈리아 밀라노)>,

안톤 루빈스타인의 <악마 The Demons (2003, 프랑스 파리)>,

그리고 베르디의 <오델로 Othello (2003, 이탈리아 플로렌스)> 등이 있으며,

1998년에는 아비아티 이탈리아 비평가상 최우수 오페라 연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도진의 오페라 연출은 그가 스승처럼 생각하는 스타니슬라브스키나

메이어 홀드처럼 가장 종합적인 예술인 오페라에서 참된 연극성을 찾아내보고자

하는 시도로 이해되고 있다.    


Profile - 상트 페테르부르크 말리극장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는 극단은 세상에 많다.

그러나 관객들로 하여금 아무리 황폐하고, 환영같을 지라도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삶 자체를 믿도록 만들 수 있는 극단은 흔치 않다.

말리 극장은 바로 그와 같은 극단이다.  – 시카고 선 타임즈


말리의 명성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명성이자 러시아의 명성이다.

모스크바,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같은 러시아의 주요 도시 중심부에는

볼쇼이(러시아어로 ‘크다’는 뜻)와 말리(‘작다’는 뜻)라는 이름이 붙은

극장들이 자리잡고 있다.


각 도시의 공연예술을 이끄는 쌍두마차와 같은 존재인 이 극장들은 전세계적으로는

러시아의 예술과 문화의 우수성을 상징하는 단체들로 인식된다.



행정수도인 모스크바에 대적하는 문화수도로서의 자존심을 지켜가고 있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자리잡은 말리 극장은, 90년대 이후 같은 도시에 자리잡은

볼쇼이 극장을 압도하고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연극예술을 대표하는 극장으로

자리잡았다.


실질적으로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모스크바 말리 드라마 극장

못지않은 명성을 누리고 있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말리 극장은 문화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자랑이자 러시아의 국가적인 자산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제는 전세계에서 러시아의 연극예술이 이룩한 탁월한 업적을 상징하는 아이콘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말리 극장은 1944년 레닌그라드 (現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설립되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가던 당시 레닌그라드에 있던 대부분의 극단들은

독일군에게 포위된 도시를 떠난 상태였다.


예술적인 의도보다는 파괴된 도시에 사는 시민들의 근심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어주려는 주(州) 행정부의 결정으로 설립되었던 말리 극장은 명확한 예술적인

프로그램도, 자체적인 극장 건물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소규모로 레닌그라드 주(州) 내의 도시와 마을 여기저기를 옮겨다니며

공연했고, 가끔 흥미로운 연극작품들을 무대에 올리기는 했지만

독자적인 결정권도 없고 대중적인 지지도 받지 못했던 극장은 무명의 유랑 극단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던 1973년 레닌그라드 볼쇼이 드라마 극장의

예술감독 토프스토노고프(Tovstonogov)의 제자인 예핌 파드베(Efim Padve)가

연출을 맡아 레프 도진을 비롯한 여러 명의 연출가와 젊은 극작가들을 영입하면서

말리 극장의 예술적인 환경은 급속도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말리 극장에서의 첫 연출작으로 1975년 카렐 차펙(Karel Chapek)의

<약탈자 The Robber>를 선보였던 도진은 독창적인 접근방식과 표현법으로

단번에 관객과 평단의 주목을 받았고, 이어서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의

<장미 문신 The Rose Tattoo (1977)>, 발렌틴 라스푸틴(Valentin Rasputin)의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Live and Remember (1979)>, 볼로딘(A. Volodin)의

<약속 The Appointment (1979)> 등을 통해 숙련된 창작작업에 대한 재능을

선보임으로써 극단의 잠재력을 과시하였다.


특히 1980년 아브라모프(Abramov)의 소설을 각색한 <집 The House>의 초연은

극도로 어려웠던 소련 당국의 공연허가를 받아낸 것부터가 말리 극장 뿐만 아니라

레닌그라드의 연극계에 있어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뿐만 아니라 러시아 전역과 해외에서 매진을 거듭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던 <집>은 1986년 <형제자매들>과 더불어 말리 극장에게

소비에트 연방의 국가연극상을 안겨주었고 남자 주역배우 니콜라이

라브로프(Nikolay Lavrov)의 사망으로 공연이 불가능해지기 전까지 2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말리 극장의 인기 레퍼토리로 존재했다.


말리 극장은 대단히 흥미로운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는데 대다수가 수년에서

수십년 간 공연되어온 작품들로 한 달에 보통 15개 이상이 무대에 올려진다.

고전에 대한 탐구와 함께 플라토노프나 윌리엄 골딩과 같은 현대작가들에 대한

연구도 멈추지 않는 도진의 열정은 과감한 실험성과 예술성을 지닌 작품들을

다수 양산하였다.


<새벽 하늘의 별들>은 1988년 러시아 단체로서는 최초로

영국 로렌스 올리비에상 (Laurence Olivier Award)을 말리 극장에게 안겨주었으며,

1986년 <집>과 함께 소비에트 국가연극상을 수항했던 수상했던 <형제 자매들>은

1994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최우수 해외 작품상을 수상하였고,

1995년에는 이탈리아UBU(언론 협회)에서 수여하는 최우수 해외작품상을 수상하였다.


2001년 내한하였던 작품 <가우데아무스> 역시 영국 지역극장경영자협회

(The British Association of Regional Theatre Managers)상과 프랑스의

언론 위원회(The Press Association of France) 최우수 작품상,

UBU 최우수해외작품상을 받았다. 이 외에도 말리 극장은  <폐소공포증>으로

1995년 제29회 벨그라드 국제 연극 페스티발 (Belgrade International Theatre

Festival-BITEF)의 그랑프리상을 거머쥐었다.


이렇게 러시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다수의 연극상을 수상하며

예술성을 인정받은 말리 극장의 작품들은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유럽 극장이자 셰계 극장으로서의 말리 극장

형식적으로 지역극장으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던 말리 극장은

1993년 러시아 정부로부터 ‘Academic’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수여받음으로써

연극분야에서의 국가적 공헌을 인정받았다.  


1992년 유럽극장연합(Union of Theatres of Europe)에 가입한 말리 극장은

이후 활발한 활동을 통해 1998년 파리의 오데온 극장,

밀라노의 피콜로 극장에 이어 세번째로 유럽 극장의 칭호(Theatre of Europe)를

부여받음으로써 세계 연극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다.


말리 극장의 작품은 유럽과 호주, 아메리카 대륙과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전역에서 공연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러시아 극예술을 평가하는 기준을

한 단계 높여 놓았다.


대부분이 예술감독 레프 도진의 학생출신들로 구성된 말리 극장의 배우진들은

탁월한 연기력으로 러시아 밖에서도 명성을 누리고 있다.

도진를 필두로 한 극단의 코치들은 틈틈히 세계 유수의 연극학교에서 열리는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학생들을 지도해오고 있는데,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극장에서는 연극입문자들 뿐만 아니라 중견 연극인들을 위해서도 매일 딕션과 연기,

보컬 클래스를 열고 있다.


1999년 말리 극장은 50석 규모의 소극장을 개관하여 젊은 연출가들과 배우들의

재능을 선보일 수 있는 실험 극장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시즌의 상당부분은

신인 연출가의 데뷔작으로 채워지며 그 결과 세르게이 카르진(Sergey Kargin),

이고르 니콜라예프(Igor Nikolaev), 유리 코돈스키(Yury Kordonsky),

블라디미르 투마노프(Vladimir Tumanov), 올렉 드리트리예프(Oleg Dmitriev) 등과

같은 신진 연출가들의 작품이 레퍼토리로 정착하였다.



레프 도진상트 페테르부르크 말리 극장의 작품 세계

                  마리아 셰브초바 (Maria Shevtsova)

도진의 업적은 1983년부터 예술감독으로 재직해오고 있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말리 극장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세계의 어떠한 극단도 말리의 앙상블만큼

꽉 짜여있지는 않고, 이토록 철저하고 연속적으로 변함없이 함께하는 작업에

오로지 집중하지는 않는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연극원(St. Petersburg Academy of Theatre Arts

: 舊 레닌그라드 연극원)에서 1967년부터 교편을 잡기 시작해 배우 3세대를 길러낸

도진은 학교-극단으로 이어지는 연속체계에 있어 말리를 하나의

‘공통어(common language)’로 확립시켰다.


말리에서는 무대 소품에서부터 기술, 발성, 음악, 무용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도와주고 전문적으로 지도하고 있다.


협동의 원칙에 의거해 64명에 달하는 배우들을 포함, 총 220명의 인력들이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헌신은 말리 극장의 다이나믹한 앙상블을 독보적인 것으로

특징지어주고 있다.  


도진에게 있어 배우의 훈련은 단지 테크닉과 연습, 메소드의 문제로

축소되지 않는다.

그것은 심성과 신경체계의 훈련, 즉 느낌과 감각, 감수성의 훈련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그의 관점은 테크닉이 감정을 일깨운다고 믿는 점에 있어서 넓게는

스티니슬라브스키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스타니슬라브스티 시스템이 배우들로

하여금 가장 깊은 곳의 생동감(aliveness)을 따르는 것을 방해하는 메커니즘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점에 있어서는 그에 대해 비판적이기도 하다.


배우들의 임무는 이러한 ‘생동감’에 도달하는 것이고 바로 이것이 그들의 성장을

촉진하며, 배우에서 배우로 또 관객으로 이어지는 연쇄반응을 점화하는 것이다.


도진은 이 과정을 가리켜 그 유기적인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

‘감염(infection)’이라고 부른다.

무엇보다도 훈련은 그 배우 안에 깃든 인간성을 영적으로, 지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발전시킨다.

그리하여 그들이 만든 연극은 관객들 역시 그와 같은 발전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하는 장(場)이 되는 것이다.



1990년 작품 <가우데아무스 (역자 주 : 2001년 LG아트센터에서 공연)>를 거쳐

졸업했던 학생들은 이러한 도진의 훈련에 대한 발전중심적인 어프로치의

증인들이다.


이 작품을 위하여 금관과 목관악기 연주를 배웠던 이들은 1990년대 초반에 걸쳐

이들의 발전상황을 모니터해주는 음악선생님을 대동하고 이 작품의 세계 투어를

가짐으로써 커다란 명성을 쌓았다.


이러한 지속적인 배움의 과정은 매우 효과적이어서, 1997년 도진이 체홉의

<제목없는 희곡>을 공연했을 즈음의 이들은 이들이 늦게 연극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전 공연작품에서 탁월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었다.


배우로서 이들의 이러한 성취는 또한 이들 자신의 인격적인 성장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되었다고 이들은 스스로 밝히고 있다.


독서 역시 이의 또 다른 예가 될 수 있겠다.

도진과 배우들은 새로운 작품을 서로에게 낭독해줌으로써 소설로부터 대본을

추출해내는데, 이는 한편으로 레퍼토리로 이미 확립된 작품들을 공연하기도 하면서

수년의 세월에 걸쳐 이루어지는 일이다.


큰 소리로 낭독을 함으로써 배우들은 자신의 청각과 무대 위에서의 상대 배우에

대한 청취능력을 다듬고, 특정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유발해내기도

함으로써 그 반응에 대한 즉흥성을 개발해간다.


이를 통해 그들이 이루는 앙상블의 독자성은 강화되었고, 배우들은 함께 발견을

해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보다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개개인의 상상력과

지적 자질을 강화할 수 있도록 고무되었다.


일례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함께 읽기로 했다면

이는 결국 도스토예프스키가 그 소설을 집필하는 동안 읽었음직한 모든 글을

읽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이렇게 축적된 문화적 소양은 그들이 구상해내는 장면마다 흘러넘치게 되었고,

이에 대한 그들의 비판적인 인식을 이끌어냈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Andrey Platonov)의 소설에 바탕을 둔

<체벤구르 Chevengur (1998)> 역시 이와 비슷한 패턴을 따랐다.

배우들은 여러 개의 장면들을 구상해 도진에게 선보였고, 늘 그러했듯 도진은

그에 대한 직접적인 논평을 하기 보다는 관찰하고, 탐구하고, 자극해주면서

전반적인 소견을 말해주었다.

그러면 배우들은 다른 대안에 도달할 때까지 그들의 ‘신경체계’를 작동시키면서

그의 의견을 흡수해갔다.


도진은 때로는 초기의 버전으로 되돌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기도 하면서 배우들이 선보이고 다듬어낸 일련의 구상들로부터

점차적으로 하나의 작품을 연출해내었다.


이러한 과정은 느리게 진행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들 공동의 노력 속에

참여자들이 겪는 모든 경험들을 끌어넣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들이 성숙해지는 것은 곧 작품이 원숙해지는 것이다.


도진은 배우들로 하여금 생존 – 여기에는 기억과 잠재의식도 포함된다 - 에 대해

한 켜 더 깊이 파고들어 가도록 만듦으로써 그들이 무엇을 연기하든 그들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실존적이고 창조적인 잠재력을 북돋을 수 있도록 자극한다.


이런 이유에서 도진의 연출가로서의 주요 역할은 ‘촉매’라는 단어로 가장 잘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도진은 연기란 ‘내면의 에너지(inner energy)’에서 나오는 것이라 믿는다.

그에게 있어 이 에너지란 우리를 움직이고, 방해하고, 흥분시켜 평온을 해치는

생각과 느낌이며, 소란스럽거나 과민해지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날카롭고

기민한 질문을 안김으로써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 참여하는 배우들은 단순한 통역자가 되거나, 더욱 부정적으로 말해

연출가의 의지를 실행하기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 도진이 일컫는 대로

연구 전반에 서 또는 ‘탄생의 여정(journey of birth)’에 있어 그 작품의

‘적극적인 공동 저작자(active co-author)’인 것이다.


특히 새롭게 태어난다는 ‘탄생’이라는 의미는 도진의 어휘를 구성하는

절대적인 부분이며 이는 작품은 ‘살아있는 유기체’이고 연극은 그와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영적인 갱생과 부흥 -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재탄생 – 의 장(場)이

되어준다는 도진의 견해와 일맥상통한다.


공동저작은 극단에게 있어 매우 중대한 목표이므로 배우들은 그들이 특정일에

연기를 하든그렇지 않든 간에 모든 구상 회의와 리허설에 참여해야만 한다.

이는 모든 이들이 특정 장면에서 얻어진 발견을 공유하고, 그 후의 재작업으로

이어지는 도미노 효과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완벽한 참여는 캐스팅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필요하기도 한데,

작품을 위해 다른 조합의 공연자들과 역할 배정이 여러 해에 걸쳐 시도되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결국 최적의 캐스팅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말리 극장의 리허설은 선생님과 조교, 디자이너, 무대 및 소품 감독,

그리고 기술자와 행정직원들이 그 작품을 공동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참여한다는

점에서 또한 독특하기도 하다.

그들은 어떤 부분에서 그들이 필요할 지를 예측해보고, 어려운 점을

극복할 수 있게 개인별,  그룹별로 도움을 제공하며, 이미 결정된 사항들을

조정하거나 새로운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제목없는 희곡 A Play with No Name>의 음악을 골랐는데

그 음악을 모두 연주하는 데 12시간이 소요된다고 하자. 그러면 선생님들은

악보를 뒤지거나, 음반을 통해 편곡된 작품들을 찾아내고, 그 곡의 조(調)를

바꾸거나 다른 음역대로 옮기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3시간 반이 소요되는 최종 버전의 작품을 위해 그 음악의 순전한

특질만을 압축해낼 수 있도록 한다.

그리하여 나온 음악은 거의 휴지(休止)없이 연주되며 재즈, 블루스, 고전음악,

러시아 낭만주의, 오페라 아리아, 왈츠, 탱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와

시대의 것을 포함하게 되는데, 이는 모두 작품의 제작에 관여한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이다.


도진에게 있어서 리허설은 그 자체로서 공연이기 때문에 배우들은 리허설 동안

마치 관객들 앞에 선 것처럼 충실히 연기를 해내야 한다.


리허설은 또한 배우와 연출가가 즉흥을 통해 서로에게 열린 자세를 취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자유의 공간으로서 스타니슬라브스키가 말하는 에튀드(etudes)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도진은 육체적인 분절(分節)이 몸과 마음, 감정과 생각, 목적과 행위,

의식과 잠재적인 욕망, 자극과 예술적인 상상 및 구성 사이의 합일을 가져온다는

가정 아래, 특히 발레나 아크로바틱과 같은 신체 훈련을 요구함으로써

에튀드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그는 또한 메이예르홀트의 주요 원칙 두 가지를 따름으로써

스타니슬라브스키적인 것과 메이예르홀트적인 것을 융합시켰다.

그 한 가지는 공상과 연극적 심상(心像)에 대한 강렬한 감각을 가지고

내면적인 것을 외부적으로 연기해내는 것이며, 다른 한 가지는

자각(self-awareness)을 가지고 연기하는 것인데 이는 유머와 아이러니, 그리고

소재와 공연되는 방식에 대한 반응을 유발해낸다.  



‘산문의 연극 (theatre of prose)’은 도진이 이룬 중요한 혁신 중에 하나로,

소설로부터 대본을 각색해냈던 러시아적 전통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도진의 배우들은 대본이 신체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것이 될 것인가를

써놓으면서 소설을 온전히 그대로 공연한다.

예를 들어 <악령>같은 작품은 3년 이상 걸렸고 공연에만도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렇게 엄청난 분량의 공연은 20시간 정도로 줄어들었다가 결국은 8시간으로

줄어들었고, 3부로 나뉘어졌다.


작품이 되는 책은 몇 가지 단계를 거치면서 테마, 모티프, 그리고 이슈에 대해

다양한 조합의 조명을 받는다.

이를 추려내고, 잘라내고, 조립하는 도진은 그가 살아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작업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마치 문학의 편집자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집중적인 탐구기간을 거치는 동안 몇 개의 가능성 있는 작품들이 중도에

포기되기도 했는데, 그 중 다수는 일반관객에게 공개되어도 충분히 좋을 만큼

가치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말리 극장의 레퍼토리는 대부분 ‘산문의 연극’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념비적인 작품 <형제자매들 (1985)>은 2차 세계대전 후 북부 러시아 농촌의

고난의 삶을 다룬 표도르 아브라모프(Fyodor Abramov)의 3부작 소설에서

탄생된 것이다.


도진은 이미 1980년 말리 극장에서 아브라모프의 <집>을 연출한 바 있다.

<악령>, <체벤구르>, <가우데아무스 (1988년 세르게이 칼레딘 작의

‘건설부대’를 연극화)>와 같이 이미 거론된 작품 외에도 <파리대왕 (1985,

윌리엄 골딩 작)>, 그리고 <가우데아무스>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구상으로 러시아

현대 소설의 단편들을 모아 오페라와 발레 작풍으로 엮어넣은 작품

<폐소공포증 Claustrophobia (1994)> 등이 있다.


말리의 배우들은 육체적이고 공간적인 한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벽을 기어오르고, 위태롭게 매달리다가, 그를 뚫고 나아가기도 한다.

난간 위를 걷거나, 바를 잡고 춤을 추는가 하면, 남자배우들은 토슈즈를 신고

춤추기도 한다.

대화는 노래로 불리어진다.

사회적, 정치적 현실에 대한 신랄한 방백(傍白)의 수단으로 금관악기가

풍자적으로 연주되기도 하고, 어떤 재미있는 장면에서는 의사들이 레닌의 시신을

되살리기 위해 그들을 의료도구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비록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테네시 윌리암스나 하웁트만을 비롯해

여러 반체제 소련 극작가들의 작품을 무대화하기도 하고, 1987년에는 세르게이

갈린(Sergey Galin)의 <새벽 하늘의 별 Stars in the Morning Sky>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도진은 희곡에 대해 우위성을 덜 두는 편이다.


모스크바 올림픽이 열렸던 1980년을 배경으로 한 <새벽 하늘의 별>은 매춘,

알코올중독, 폭력과 강간을 소재로 하고 있다.

매우 외향적인 스타일로 공연되는 이 작품은 러시아 연극사상 최초의

누드 러브 씬을 포함하고 있기도 한데 작품 곳곳에서 애수와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말리 극장은 1988년 처음으로 서유럽을 방문하면서 <형제자매들>과 함께

이 작품을 선보였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스크바 예술 극장 다음으로

가장 많은 해외공연을 가지는 러시아 극단이 되었다.


도진은 1992년 클레이스트(Kleist)의 <깨진 물병 The Broken Jug>,

오닐의 <느릅나무 아래의 욕망>를 연출한 데 이어,

1994년 <벚꽃 동산 (Cherry Orchard)>를 시작으로

2001년 <제목없는 희곡>, <갈매기 The Seagull>,

2003년 <바냐 아저씨 (Uncle Vanya)>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극작가인 체호프의 작품들도 선보였다.


도진의 체호프 연출작들은 불안, 불확실성, 자기중심성, 잔혹성과 그릇된 사랑에

초점을 두고 있다.

<벚꽃 동산>은 그 중에서도 가장 음울한 작품인데 이는

에두아드 코체르진(Edouard Kochergin)의 디자인에서 잘 드러난다.

스크린이나, 복도, 문, 창문, 그리고 제단 이 되기도 하는 세 장의 검은 그림은

공연 종반부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찢겨져 나가 빈 틀만 남게 되면서

마치 폐가처럼 보이게 만든다.


창문 뒤로 비치는 꽃나무 가지들은 외부와 실내, 동산과 집,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육체와 정신상태를 연결지어 준다.

집 또는 내면의 통로 안팎을 엮어나가는 배우들의 춤은 구조물이 그들 주변에서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것보다 더 가슴에 사무치게 다가온다.


도진은 그의 모든 체호프 연출작에서 드러나듯이 페이소스를 피해가면서,

배우들이 구체화하는 특정 사례에서 비롯되는 힘을 일반화시키려 애쓴다.


연극은 사람들에게 그들 공통의 인간성을 보여줄 때 가장 중요한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벚꽃 동산>에서 보여진 연출과 무대미술 간의 공생관계는 말리 극장의

원칙이기도 하다.

<형제자매들>을 위한 코체르진의 디자인은 다목적으로 활용되는

통나무 갑판으로서, 도진으로 하여금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과 장소, 장면,

상황과 행동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해주었다.

통나무는 오두막이 되었다가 목욕탕, 밀밭이 되기도 하며, 정부에 공납할 곡식을

실어가는 짐차, 선전영화를 보여주는 스크린, 연인들이 밀회를 나누는

다락방이 된다.


<악령>에서 널빤지와 도르래로 이루어진 기계장치는 등장인물들이 서로를 괴롭히고

괴롭힘을 당하면서 때로는 광기와 죽음에 이르게 되기도 하는 도시 빈민가의

구석구석을 보여준다.


<제목없는 희곡>에서는 <가우데아무스>, <폐소공포증>, <체벤구르>, <갈매기>의

무대를 디자인하기도 했던 알렉세이 포라이-코쉬츠(Alexey Porai-Koshits)에 의해

물이 주로 사용되었다.


배우들은 물에서 헤엄치고, 입맞춤을 나누거나 춤을 추기도 하고, 그 위에 초를

띄워놓기도 한다.

물 속에서 주인공 플라토노프는 마치 물고기처럼 그물에 걸리고 만다.

국유지를 나타내기도 하는 물은 생명과 절망, 죽음의 메타포가 되기도 하고,

마치 체호프의 시대에서처럼 오늘날의 사람들도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부유하고 있다는 작품의 핵심 주제를 표상하기도 한다.


각 장면들은 그 의도가 다를지라도 언제나 이음새 없이 연결되어 있다.

<형제자매들>의 이음새 없는 구성은 마치 교향곡과 같고, 그 리듬과 프레이징,

종지(終止)법은 부분과 전개, 그리고 모티프에 따라 변화한다.


<악령>에서 이는 배우들의 집중과 긴장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든다.

<제목없는 희곡>에서 도진은 여러 장면을 동시에 진행시켜, 서너 개의 장면들이

한 번에 말하여지도록 한다.

어느 한 장면에서 불리는 노래는 동시에 진행되는 다른 장면에서 읊어지는 대사로

인해 안 들리지는 않는데 이는 휴지 없이 계속 연주되는 음악에서와는

다른 점이다.


동시성은 여러 시각적이고 공간적인 차원을 창조할 뿐만 아니라 소리까지도

직조해낸다.

이 작품에서 보여준 도진의 혁신은, 배우들이 그 자신들이 한계라고 생각해왔던

것을 넘어서는 발전을 이루어내면 연극은 사실상 어떠한 한계도 가지지 않게된다는

그의 믿음을 뒷받침해준다.


도진은 배우들이 다재다능하며 명인(名人)으로 커나갈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그들이 정신적으로 명민하고 유연하며, 담대하게 위험을 감수하고, 무엇이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덕성을 함양시킨다.


연출가로서 도진이 이루어낸 업적에는 오페라도 포함되는데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의 <엘렉트라 Elektra (1966,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살로메 Salome (2003, 프랑스 파리)>,

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가의 레이디 맥베스 Lady Macbeth of Mtensk

(1998, 이탈리아 플로렌스>, 차이코프스키의 <스페이드의 여왕 The Queen of

Spades (1998,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마제파 Mazepa (1999, 이탈리아 밀라노)>,

안톤 루빈스타인의 <악마 The Demons (2003, 프랑스 파리)>,

그리고 베르디의 <오델로 Othello (2003, 이탈리아 플로렌스)> 등의 작품이 있다.


그 이전의 스타니슬라브스키나 메이예르홀트처럼 도진도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종합적인 예술인 오페라에서 참된 연극성을 찾아내보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곧 그가 오페라를 마치 구술 연극(spoken theatre)처럼,

그리고 성악가들을 배우처럼 다룬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또한 음악과 연기가 서로를 묘사해낼 뿐만 아니라 각각의 독자적인 역할을

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도진은 스타니슬라브스키와

메이예르홀트가 이루어놓은 것을 진일보시킨 피터 브룩(Peter Brook),

조르지오 스트렐러(Giorgio Strehler)와 같은 연출가와 상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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