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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극단 쇼팔로비치

문예당 | 기사입력 2010/02/17 [16:33]

유랑극단 쇼팔로비치

문예당 | 입력 : 2010/02/17 [16:33]


유랑극단 쇼팔로비치는 연극에 대해 ‘옳다, 그르다’의 가치판단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 다른 상황의 사람들, 다양한 인간상을 균형 있게

보여주면서, 연극에 대해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 그에 대한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에 대해서는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다.

이는 한 단계 발전하여 예술에 대한 의문과 해석으로 연결된다.

유랑극단 쇼팔로비치


Putujuće Pozorište Šopalovic

공연 개요

작 류보미르 시모비치 Ljubomir Simović  

역 김지향 연출 이병훈


□ 공연일시 : 2010년 3월 5일(금) – 3월 28일(일)

                화, 목, 금 7시30분 / 수, 토, 일 3시 / 월 공연없음

□ 장 소 : 명동예술극장

□ 티켓가격 :  A석 2만원, S석 3만 5천원, R석 5만원

□ 문의/예매 : 명동예술극장 1644-2003 www.MDtheater.or.kr

  출 연

조영진, 이정미, 김명수, 황연희, 박호석, 한갑수, 김현웅, 정나진, 김정호

송인성, 조선주, 김혜영, 박진주, 이혜진, 이현옥, 하지은, 이화정, 박명아,

유상아

   스태프

무대디자인 로렌스 브릴레이(Laurence Bruely, 1990년 Herrisson ), 윤시중

조명디자인 장지연, 의상디자인 이유숙, 소품디자인 박영애, 음악감독 정재일,

움직임연출 유진우, 소리지도 김진영, 신체훈련 이상철, 조연출 신용한, 유한철

제 작 : 명동예술극장


명동예술극장 2010년 시즌오프닝 공연

유랑극단 쇼팔로비치  

2009년 6월 5일 옛 명동국립극장을 복원하여 연극전문제작극장으로 새롭게 출발한

명동예술극장이 세르비아 작가 류보미르 시모비치 (Ljubomir Simović)의

<유랑극단 쇼팔로비치>(Putujuće Pozorište Šopalovic/ 연출 이병훈)로

2010년 시즌의 문을 연다.


개관 첫해 <맹진사댁 경사>를 시작으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밤으로의 긴 여로>, <베니스의 상인>까지 묵직한 정통연극 제작을 통해 대중성과

작품성에 있어 평균이상의 성적을 거두었던 명동예술극장은 개관 2년 차로

접어드는 2010년, 연극전문제작극장으로서의 색깔을 더욱 강화하면서

연극이 가지는 깊이와 힘을 보여줄 예정이다.


한국에서 처음 만나는 세르비아의 보석 같은 작품

        ‘스테리야상’에 빛나는 유랑극단 쇼팔로비치


세르비아 최고의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 류보미르 시모비치

     작가가 추구하는 이상주의적 염원

1958년 시인으로 등단한 류보미르 시모비치(1935년 생)는

1975년 <유랑극단 쇼팔로비치>를 발표, 1986년 이 작품으로 당시 유고슬라비아에서

가장 훌륭한 극작가에게 수여하던 문학상인 ‘스테리야상’을 수상했다.

이 전에 이미 시인으로 등단한지 10년째 되는 1968년 ‘조르제 요바노비치 상’,

‘아시도라 세큘리치 상’을 수상하면서 문학성을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대중들의

인기도 한 몸에 받았다.

이어 <유랑극단 쇼팔로비치>를 비롯한 여러 희곡작품들과 TV 드라마 <코소보 전투>를

발표했다. 두 작품 모두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꿈을 좇는 이상주의적 염원이 나타나며, 어떤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이상이 등장인물들에 표현되어

나타나곤 한다(번역자 주).

이러한 작가의 이상은 어김없이 <유랑극단 쇼팔로비치>에도 나타나 있다.


주린 배를 채워야 하는 빈곤한 식탁에 앉아 만찬을 상상하고, 지금 이 자리에 앉아

나라와 시대를 뛰어 넘으며 무슨 공연이라도 나무판자만 있으면 무대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상은 현실 인지와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놓치지 않는다.

‘당신은 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가’

       : 삶과 예술에 던지는 질문 하나


수많은 외국어로 번역, 소개된 <유랑극단 쇼팔로비치>는 1985년 세르비아의

유명연출가 데얀 미야치(Dejan Mijać)에 의해 유고 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고,

대단한 인기를 바탕으로 1988년 구 유고연방 10여 개 주요 도시에서 동시에

공연되었다.


폴란드, 프랑스, 스위스, 슬로바키아, 체코 등에서 상연된데 이어,  

2009년 도쿄 와이드 씨어터에서 아시아 초연이 이루어질 정도로 세계 공통의

주제를 담고 있는 <유랑극단 쇼팔로비치>는 2차 대전 중 세르비아의 작은 마을

우지체를 배경으로 공연을 하려는 배우들과 마을사람들의 갈등을 담고 있다.


연극, 그리고 예술의 의미와 존재가치에 대한 물음

“사람들이 삶을 이해하도록 또 잊을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내용은 “연극이라는 것이 이상과 환상만을 추구하는 듯

보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인생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일면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는 인간의 인생과 사유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작가의 작품세계와

사상을 대변하고 있다고 번역자는 이야기한다 .


<유랑극단 쇼팔로비치>에는 전쟁 중에도 사람들에게 꿈과 이상,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배우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동시에 먹고 살기도 힘든, 그래서 자신과는 다른 모습의 배우들을 탐탁치

않아 하는 실제 우리와 같은 마을 사람들이 등장한다.


극 초반에는 유랑극단의 배우들과 공연을 제재하려는 독일군의 대립구도,

즉 예술이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구분 짓는 수단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실제로는 배우들과 마을 사람들의 갈등, 즉 다양한 삶의

양식을 가진 인간들의 갈등이라는 것이 나타난다.


2차 세계대전 중인 세르비아의 작은 마을 ‘우지체’

그곳에서 벌어지는‘삶과 예술의 한판승부’


<유랑극단 쇼팔로비치>는 2차 세계대전을 시대적 배경으로, 원작자 류보미르

시모비치의 고향인 “우지체(현실에서는 비교적 조용히 전쟁을 치른 마을이다)”를

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어느 무더운 한여름, 바실리예가 이끄는 유랑극단이 남자라고는 술취한 늙은이와

독일점령군 밖에 없는 이 작은 마을에 들어서면서 극은 시작된다.



“빵 굽는 사람은 어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어디긴요? 그야 빵가게죠!”...

“그럼, 배우는 어디 있어야 할까요?

“... 극장에 있어야겠지요!”


극중 심카(젊은 미망인으로 줄곧 검정 옷만을 고집하나, 극의 마지막에는 상복을

벗어버린다)는 불쑥 배우들에게 의문을 제기한다. 사람이 죽고 다치고, 총성이

울리는 전쟁 중에 화려한 의상을 입고, 화장을 하고,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옳다, 그르다’라는 가치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다만 혼란스러운 것이다.


심카의 ‘혼란’에서 시작된 심카와 배우들의 대화에서, 삶과 연극에 대한

시각 차이가 나타난다. 하지만 극은 흑백논리로 양분되지 않고 오히려,

극단의 배우들조차 ‘연극’에 대한 관점과 해석은 모두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유랑극단 쇼팔로비치>는 연극에 대해 ‘옳다, 그르다’의 가치판단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 다른 상황의 사람들, 다양한 인간상을 균형 있게

보여주면서, 연극에 대해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 그에 대한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에 대해서는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다.

이는 한 단계 발전하여 예술에 대한 의문과 해석으로 연결된다.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이 아닌 의미에 대한 질문과 해석

마을사람들과 배우들의 삶과 현실에 대한 인식 차이를 통해 우리는 더욱더 현실

속 예술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작가가 거의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동안

문단 활동을 하면서 궁극적으로 전하려고 한 메시지는 인간의 운명과 삶에 대한

고찰이었다.  


비단 예술에 대해서 뿐 아니라 누구나 무엇이 옳고 그름을 떠나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이상향에 대한 염원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예술 특히 연극이 지니는 본질이자 인간에게 제공하는


삶의 반영일 것이다.

명동예술극장이 개관 2년째를 맞이하는 2010년의 문을 여는 작품으로

<유랑극단 쇼팔로비치>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서 미루어 볼 수 있다.


즉, 연극전문 제작극장으로서 연극 본래의 의미를 탐구해보고자 하는 데 있다.

예술을 위한 예술, 연극을 위한 연극, 일부 계층의 특권 또는 사치와 같은

‘추상적’인 연극이 아닌, 삶에서 출발한 예술과 연극을 자문하고,

추구하고자 한다.


이는 공연을 만들어가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본인이 하고 있는 연극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문하고 고민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연극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아온 관객이 “극”과 성공적으로 소통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Well-written Play, Well-made Play

<유랑극단 쇼팔로비치>에는 소위 ‘주인공’이 없다.

앞서 말했듯 서로 다른 삶의 모습과 예술에 대한 다양한 시각-배우, 마을사람들,

독일점령군-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이 공연을 만들기 위해 모인 배우들에게는

한가지 특색이 있다. 지금 대학로 공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40대의

배우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혹과 지천명의 사이, 대한민국의 배우의 삶을 사는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불혹이니, 지천명이니 하는 나이는 이들에게 너무 무겁거나 단편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극단 미추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정나진은 극과 현실을 구분 못하고 일상을

연극처럼 살아가는 어쩌면 배우일 수 밖에 없는 필립으로 분한다.


그리고 지난해 <맹진사댁 경사>(이병훈 연출)에서 유모로 주인댁 마님을 들었다

놨다 하며 맛깔스런 연기를 선보였던 이정미가 한때를 풍미했지만 세월이 흘러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남자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극단의 살림꾼 나이든

여배우 엘리사베타로 분해 여전히 넘치는 에너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또한 세상에

대해 관조할 수 있는 여유를 보여줄 예정이다.


<밤으로의 긴 여로>(임영웅 연출)에서 아버지 타이런역을 맡아 나이와는 상관없이

안정적인 캐릭터 표현으로 호평을 받은 김명수는 삶과 무대는 구분되어야 하는

현실임을 인정함과 동시에 배우로서 사람들이 삶을 이해하는 것과 잊는 것을 돕고

싶어하는 유랑극단의 단장 바실리예로 분한다.


“나이 있는 역할은 그 연배의 선배님들이 해주셔야 무대가 안정된다…”라면서도

“또 젊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내재되어 들끓는 에너지를 보여줄 수만 있다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며 작품에의 참여의의를 표했다.


이들과 함께 황연희, 김현웅, 정나진(이상 극단 미추), 김정호(이기동 체육관 출연),

박호석 등 다양한 무대에서 안정적으로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는 배우들이 참여해

등장인물들간의 균형감과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할 계획이다.


2차 세계대전 중인 세르비아의 작은 마을 ‘우지체’

그곳에서 벌어지는‘삶과 예술의 한판승부’


<유랑극단 쇼팔로비치>는 2차 세계대전을 시대적 배경으로, 원작자 류보미르

시모비치의 고향인 “우지체(현실에서는 비교적 조용히 전쟁을 치른 마을이다)”를

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어느 무더운 한여름, 바실리예가 이끄는 유랑극단이 남자라고는 술취한 늙은이와

독일점령군 밖에 없는 이 작은 마을에 들어서면서 극은 시작된다.


유랑극단이 선택한 작품은 쉴러의 <도적떼>. 바로 우지체를 점령하고 있는

독일작가의 작품이다. 공연을 해야만 하는 그들이 허가를 받기 위해 선택한

작품이지만, 동시에 ‘자연과 자유’에 대한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시기에 연극은 사치라는 생각을 하는 마을 사람들은

유랑극단 공연에 냉담할 뿐 아니라 배우들을 비난한다.


마치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모여있는 마을에서 낮이면 사람이 모이는 공터

간이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밤이면 흩어져 버리던, 또 일본군에게 작품 검열을

받던 우리 시대와 닮아 있다.


‘우지체’에서 발견되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

세르비아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반도와의 유사한 점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한반도와 중국의 관계처럼, 세르비아는 오스만 제국과의 끊임없는 갈등관계에

있었다. 근대에 이르러,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독립하고자 취했던 제스처는 결국

1차 세계대전을 불러일으킨다. 세계대전시, 한국은 일본의, 세르비아는 독일의

지배를 받았으며, 세계대전 종료 후에는 두 나라 모두 이념 갈등, 민주화 투쟁

등으로 나라가 들썩거렸다. 현재 독립을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 국제적 승인을

얻어내지 못한 코소보와 세르비아의 관계는, 남-북의 대치와 공존을 연상케 한다.


발칸 반도에 위치한 세르비아와 한반도에 위치한 한국의 지리적인 유사점은

물론이다. 한국과는 다른 인종, 다른 민족 세르비아이지만, 우연적으로 한국이

걸어온 역사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은 더욱 친근하다. 평생 삶의 모든 스트레스를 단순한 빨래를 통해

해결하는 동시에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변하는 엄마(기나)가

있다. 또 술로 세상을 회피하고자 하는 아버지(블라고예)와 현실과 타협해

나가면서도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또다른 아버지(바실리예)가 등장한다.


무언가 차분한 신비감에 쌓여있으면서 안의 열정을 감추고 있는 인물(심카)과

철없이 제멋대로인 인물(소피야)가 있다. 그리고 전쟁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점령군(밀룬, 드로바츠)이 등장한다. 어쩌면 이는 인간의 보편성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비록 낯선 문화의 작품이지만, <유랑극단 쇼팔로비치>는 한국인의 감성을

공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전쟁과 인간의 비이성, 배고픔과 두려움을 눈과

온몸으로 겪으며 질곡의 삶을 살아온 세대, 또 그런 세대를 부모로 둔 젊은이들.

그리고 지금을 살면서, 예술의 혼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을 아련하게 만드는 그 무엇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모두의 공감과 소통을 이끌어 내는 것이 연극이라면,

<유랑극단 쇼팔로비치>는 그 어떤 작품보다도 연극의 역할에 충실한 공연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SYNOPSIS

2차 세계대전 중 세르비아의 작은 마을, 찌는 듯한 여름날.

여자들만 있는, 남자라고는 나이든 술주정뱅이와 끔찍한 독일점령군만이 있는

마을에 바실리예가 이끄는 유랑극단이 찾아온다.


공연을 홍보하던 배우들은 소동을 피운다며 경찰서로 끌려가고 마을사람들은

속시원해 한다. 마을 사람들은 근처에서 총소리가 들리고 하루에도 가족들이

끌려가거나 몇 명씩 죽어나가는 전쟁 중에도 화려한 모습과 자유로운 행동으로

연극을 한다는 배우들이 못마땅한 것이다.


연극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경찰들은 극과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배우들에게

더더욱 화가 나지만 공연허가증을 보고 할 수 없이 보내준다.


남편을 잃고 검은 상복만 입고 지내는 미망인 심카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있는

전쟁 중에도 공연을 하는 의미를 묻지만, 배우들은 배우이기 때문에 공연을

할 뿐이라며 당연하다는 듯 답한다.


같은 날 오후, 경찰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배우들에게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공연금지를 선언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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