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공연/문화 > 뮤지컬

뮤지컬,musical, 한국 최초의 창작뮤지컬은 과연 어떤 작품인가?(3)

당백전,금백전을 통해본 한국 뮤지컬의 효시

권종민 기자 | 기사입력 2017/12/09 [15:47]

뮤지컬,musical, 한국 최초의 창작뮤지컬은 과연 어떤 작품인가?(3)

당백전,금백전을 통해본 한국 뮤지컬의 효시
권종민 기자 | 입력 : 2017/12/09 [15:47]

연재순서 입니다. 

   모바일에선 해당 기사만 보입니다. PC모드로 변환해서 PC모드에서 보세요

   - PC 모드에서 

           - 기사 맨 밑 관련기사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1.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무엇인가? "살짜기 옵서예"?

 

2. 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000의 000이다.(2)

 

3. 뮤지컬,musical, 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과연 어떤 작품인가?(3)

 

4.[단독]한국최초의 뮤지컬 연출자는 가수 전인권 형, 전세권 연출가

 

5.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전세권 연출의 000 이다 - 최초 블랙리스트에 희생 당한 한국 최초 뮤지컬

 

6.전세권 연출의 ‘극단 제3극장’은 한국 최초의 뮤지컬 ‘새우잡이’를 국립극장 무대에 올린다.

 

7. 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전세권 연출의 뮤지컬 카니발 수첩이다

 

 인터뷰의 저작권은 문화예술의전당 www.lullu.net 에 있습니다. 인용,보도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1, 2편에 이어지는 3편입니다. 

 

유료관객 보다 초대관객이 많았던 까닭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공연의 홍보 및 제작지원을 위해 신문 또는 방송사가 좌석권을 받는 대신에 홍보를 해주었던 것이다. 당시 두번째의 제작후원사인 주간한국은 한국의 공연예술문화 발전을 위해서 한국 최초의 뮤지컬 000”를 적극 지원해준 것이다. 그리하여 '주간한국'은 첫날 첫회공연에 구독자들을 500명 초대하였던 것이다.

 

당시 첫번째 제작 후원사는  독일계 의약품 업체로 뮤지컬 000를 연출하신 분의 증언은,

그 회사를 출연 배우들과 함께 찾아가 뮤지컬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극단 이념에 대해 설명하자 독일인 대표는 좋다, 얼마면 되겠느냐? 여기 수표를 줄테니 필요한 금액을 적어라!”며 

백지수표를 내밀었다고 증언한다.

 

▲  시인 김수영 © 문화예술의전당

 

여기서 기자가 어떤 분과 통화한 내용을 잠시 소개한다. 그 분은 뮤지컬에 종사하는 분으로 명성이 자자하신 분이다. 존함은 공식인터뷰를 하지 않았기에 밝히지 않으며, 개인적으로 그 분과 이 논제에 대해 공식인터뷰를 할 생각은 아직 없다.

 

뮤지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공연 당시 프로그램에 뮤지컬이라고 명기되어야 합니다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가 공연했어야합니다

음악이....”

 

그동안 뮤지컬에 대해서는 3백여건에 달하는 연구가 있었다. 그 중 한국 뮤지컬사에 대한 연구로는 000의 한국 초창기 뮤지컬 연구, 000의 한국 뮤지컬사 연구.......가 있으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한국 뮤지컬에 관한 논문은 몇 편이 보이나 찾기 힘들다” (장연희 석사학위 청구논문 인용, 이하 글 언급 시 까지 논문 인용 발췌)

 

위 논문에서 뮤지컬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 perhaps the most popular form of theatrical entertainment in U.S, might trace its beginnings to the combination of music, dance, and drama that has provided the popular entertainment of most of the world primitive cultures.,음악과 춤이 극의 플롯 전개에 긴밀하게 짜맞추어진 연극,뮤지컬 코미디나 뮤지컬 플레이를 종합하고, 그 위에 레뷔, , 스펙터클 등의 요소를 가미한 것라고 기술하였다” {빠트리스 파비스 연극학사전’,현대미학사, 1999 신현숙 .윤학로 옮김

 

일반적으로 뮤지컬이라 함은 뮤지컬 코미디, 뮤지컬 플레이, 뮤지컬 레뷔 등을 총칭하지만 뮤지컬이란 용어로 통용된다.”

 

“1920년대 전후에 이르러서야 근대 전통 뮤지컬의 시조라 할 수 있는 가극의 등장을 보게 된다. 황문평의 한국 대중 연예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가극이라는 명칭이 등장한 것은 1928년 극단 성좌의 극락조에서이다. 가극의 각본은 음악과 안무, 코미디를 드라마틱하게 구성하였고 지금의 뮤지컬 플레이나 뮤지컬 쇼에 가까운 형태를 띠웠던 것으로 본다.

 

1929년 뮤지컬 쇼와 드라마를 전문으로 하는 삼천 가극단이 창단됐다. 1부는 코믹터치를 가미한 연극에 음악을 삽입한 공연과, 화려한 무대로 여성들의 라인 댄스가 돋보이는 2부 공연을 선보였다. ‘삼천 가극단은 일본 다카라즈카 가게끼에서 활동했던 권삼천이라는 여성이 주도하였고, 이즈음 1930년대에 일본에서 조직된 배구자 악단이 등장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공연사에 따르면 한국 뮤지컬의 효시는 살짜기 옵서에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것은 우리 연극사에 커다란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앞의 뮤지컬의 사전적 의미에서 보았듯이 뮤지컬의 의미는 연극에 노래와 춤이 더해졌다는 것에 뮤지컬의 패러다임을 알 수 있음에도 살짜기 옵서에가 우리나라 뮤지컬의 효시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한국에서 최초로 서양 뮤지컬이 우리말로 공연되기는 1937극연좌에 의해 공연되었던 포기와 베스이다. 유치진 연출로 포기에 김일영과 베스에 김영옥양을 중심으로 부민관에서 공연되었다는 기록은 1962년 드라마센터에서 공연된 포기와 베스의 팸플릿 중 유치진 연출의 글에서 확인된다.”

 

위의 인용에서 보듯이 1966살짜기 옵서에이전에 몇몇의 작품이 공연되었으나 현재 그 기록이나 내용들은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번역 뮤지컬인 1962포기와 베스는 차지하더라도 현대적 뮤지컬 양식을 표방한 공연, 1965년 뮤지컬 ***1966년 뮤지컬 000가 엄연히 뮤지컬의 형식을 갖춘 공연이었으나 그 역사는 엉뚱하게 기록되어 있음은 우리 역사 도처에서 발견되는 강자의 논리라 볼 수밖에 없다.”

 

또 최근에 발간된 공연전문 계간지 ‘극작에서 공연까지에서 김영무는 뮤지컬***의 대본과 곡들을 실으며 타이틀을 한국 창작 뮤지컬의 효시라고 분명하게 명명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정황에 비추어 지금까지 한국 창작 뮤지컬의 효시로 불려졌던 살짜기 옵서에는 뮤지컬*** 로 정정됨이 마땅하다는 것이 본 연구자의 견해다.”

 

”‘예그린 악단19615.16 혁명 주체인 김종필이 북한의 가무극에 필적할 가무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후원회장이 되어 조직한 관변단체이다. 정치적 목적에 의해 창단된 단체이니만큼 김종필의 정치적 부침이나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6번의 해체와 재창단의 곡절을 겪었다.

 

영문학자 오화섭 교수에 의해 옛과 어제를 그리며 내일을 위하여라는 뜻을 가진 예그린의 단체명이 탄생하였고 진용은 단장과, 지휘자 김생려, 안무 김민자, 작편곡 김희조, 연출 이기하등과 정규대학 출신의 남녀합창단과 관현악단, 무용단 등 300여명의 단원으로 구성하여 한국 민속예술을 계승하고 대중화하여 새 영역을 확립, 한국 민속예술을 계승하고 대중화하여 새 영역을 확립, 한국 전통적 색채를 살린 무대예술 창조의 취지를 담고 있었다.

 

이는 중국의 모택동이 국민들에게 공산당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 브레히트의 도움으로 목적극을 차용하여 이에 자극 받은 북한의 김일성도 고무가 되어 공산당 선전의 목적과 자신의 입지 구축을 위해 피바다’ , ‘꽃파는 처녀등의 공연을 하여 국민들에게 공산당 선전과 애국심 고취라는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이런 연유로 적대적 관계에 있던 남한의 군부정권도 북에 필적할 공연단체의 필요성에 의해 탄생된 것이 예그린 악단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태생적 한계라는 배경을 안고 태동한 예그린 악단1962113~17일까지 시민회관에서 창립공연 삼천만의 대향연을 이기하가 연출하고 지휘에는 김생려, 예그린 합창단과 무용단, 관현악단이 출연하며 단체의 성격과 지향목표 방향성을 제시했다.“

 

내용에서 보면 삼천만의 대향연은 뮤지컬이라기보다는 극장연예물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전사에도 삼천만의 대향연은 극적 줄거리 없이 국악과 양악, 무용 등이 모여 공연한 총체예술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한다.”

 

“‘살짜기 옵서에를 앞서 공연되었던 ***는 한국 창작뮤지컬로 효시라는 점에 대한 연구는 필요한 것이다. ***는 연극을 했던 배우들이 새롭고 흥미로운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참여했었던 것이며 이와 대조적으로 당시 넉넉한 재정적 후원과 스타를 앞세워 공연했던 살짜기 옵서에는 뮤지컬이라기 보다는 쇼에 가까운 공연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위 인터뷰 내용은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한국 초기 뮤지컬과 번역뮤지컬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참여하였던 배우 김성원의 회고인 까닭이다.”

 

위 논문 인용을 그치며 다음 편은 *** 000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합니다.

 

아래 화폐 사진을 보시면 우리나라 최초의 백량전이 그동안 알고 있었던 당백전이 아니라

금백전 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화폐전문지인 월간 화폐창간호에서 금백전에 대해 말했었지만, 워낙 진귀한 물건이라 실물로 확인한 사람이 극소수라 대부분의 전문가나 연구자는 당백전만 알고 있는 실정입니다.

 

▲     ©문화예술의전당

 

 

▲     © 문화예술의전당 권종민 편집장 개인 수집품 

                

          두 동전의 틀린 곳을 찾아보세요.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 작품은 과연 어떤 작품이 맞는가에 대해서는 공연전문 계간지 극작에서 공연까지에서 먼저 일부 밝혔습니다.

 

먼저 읽으신 분은 ***의 작품명을 알고계시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000을 효시로 보고 있으며, 그 분 역시 *** 보다는 000를 우리나라 뮤지컬의 효시라고 주장하고 계십니다.

 

어학사전 -효시 (嚆矢) :; 사물이 비롯된 맨 처음

 

다음에 또 연재합니다.

 

[권종민 기자] lullu@lullu.net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포토뉴스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방탄을 위해 민생예산마저 포기했습니다. 정치의 본령을 잊은 민주당이 안타깝습니다." [국민의힘 박준태 원내대변인 논평]
1/91